지난달 발생한 규모 5.8의 경주 지진은 한반도가 더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을 확인해주었다. 지금까지 지진 대비가 부족했던 우리나라에 6.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경우 피해가 엄청날 것이라는 점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 원전 밀집지역이면서 가장 노후된 원자로를 가동 중이다. 원전이 밀집한 고리와 월성은 경주 지진 진앙지와 매우 가까울 뿐 아니라 활성단층지역이라 앞으로도 지진 발생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곳에 대한 안전성 평가 역시 이전과는 다른 기준으로 새롭게 시행되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우리의 에너지 정책을 다시 짜고, 원전 의존도를 줄여나가 최종적으로 '탈(脫)원전'을 추구해야 한다. 이번 지진을 통해 국민들은 이미 탈원전이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이 걸린 당위성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원전의 당위성을 인식한 후에 찾아오는 것은 '그게 가능하겠어?'라는 질문이다. 우리나라는 총 4개의 원전에 24기의 원자로를 가동하고 있다. 발전량으로는 세계 6위, 원전 의존도로는 세계 2위 수준이다. 전체 에너지의 30%에 해당하는 전력을 원전이 생산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수준은 세계 82위로 OECD 국가 중 꼴찌이며 전체 에너지 생산의 1.6%에 그치고 있다. 결국 탈원전은 30%의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것, 1.6%의 재생에너지를 35%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핵은 비싸고 위험한 에너지'라는 구호 아래 2022년까지 탈핵을 선언한 후 꾸준히 재생에너지 확대정책을 시행했다. 그 덕분에 2014년까지 전체 에너지 생산의 27%까지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또 올해는 신재생에너지 법안을 통과시켜 대기업이 재생에너지 사업의 주도권을 가지도록 유도함으로써 향후 재생에너지 분야는 더욱 성장할 전망이다.

최근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환경은 독일보다 재생에너지 생산에 더욱 적합하고, 기술적으론 재생에너지만으로도 우리나라의 전력수요 100%를 충당할 수 있는 잠재 역량이 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는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큰 동력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경제성장을 이끌어왔던 산업의 축인 조선·해운·철강이 최근 위기를 맞으면서 향후 신성장산업을 찾지 못하면 우리나라 경제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만약 재생에너지에서 우리나라가 주도권을 잡으면 전 세계로 성장할 수 있는 차세대 핵심산업의 발판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최근 북극의 얼음이 빠른 속도로 녹고 있고, 중국은 최악의 스모그로 고통받는 것 등을 볼 때,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세계적으로 필연적인 문제가 되었다. 얼마 전 세계 73개국이 파리기후협정 비준을 마쳤고, 앞으로의 IT산업은 100% 재생에너지를 필수 전제로 할 예정이므로 재생에너지 시장의 성장 잠재력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물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않는가? 우리나라는 다른 이들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것들을 이뤄낸 경험이 있다. 국가는 재생에너지 생산과 공급기술 개발에 과감히 투자하면서, 각 기업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몇% 이상을 필수적으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도록 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일궈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정치적, 경제적, 환경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찾아 성공하지 않으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기로에 서 있다. 만약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탈원전을 이룩한다면, 이번에는 '한강의 기적'이 아닌 '낙동강의 기적'으로 전 세계에 다시 한 번 자랑스러운 나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우리 모두가 새로운 시대로 들어설 수 있는 비상탈출구가 될지도 모른다.

고신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