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젊음이 최고의 자산이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기다리지 말고 젊을 때 무엇이든 하라고. 아무 것도 잃을 게 없는 지금 하라고. 젊음은 특권이자 자랑이다.
그런데 유독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젊다는 것이 간혹 불리하게 작용한다. 싸우다가 툭하면 나오는 말이 "야! 너 몇살이야"또는 "어린 것이"이다.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싸우는 것도 나이에 맞춰 해야할 판이다. 복싱 레슬링 유도 같은 운동 경기 역시 몸무게가 아니라 나이별로 분류해 시합하는 것이 옳다. 시장 군수 구청장에서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도 힘들게 투표할 것이 아니라 후보자 중에서 연장자를 선택하면 될 일이다.
이기동(73)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은 새파랗게 젊은 의원들이 아주 못마땅했다. 국회의원이랍시고 아버지뻘이자 스승뻘인 자신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감장에 불러낸 것부터가 고깝다. 그런 마당에 원장직이 청와대나 교육부의 낙하산 인사가 아니냐고 몰아세운다. 아니 ! 이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울화가 치밀어 국감장을 뛰쳐나가 화장실에서 애먼 비서에게 화풀이를 한다. 새파랗게 젊은 것들이. 차라리 내가 원장 안 하고 말지.
이 원장이 선 자리는 국회 국감장이다. 교문위 의원들은 아들뻘 제자뻘이기에 앞서 국민의 대표들이다. 결국 국민더러 새파랗게 젊은 것들이라고 나무란 셈이다. 73세의 교수 출신이, 더구나 한국학 연구의 총본산이라는 기관의 장이 연출한 가장 비교육적이면서도 어쩌면 가장 한국적인 한 편의 코미디다. 이 원장이 좋아하는 나이를 따져 보자. 교문위에서 이 원장을 상대로 질의한 유은혜 의원은 55세, 신동근 의원은 56세다. 그렇게 새파랗게 젊지도 않다.
이 원장 부류의 노인들을 일본에서는 '폭주 노인'이라고 한다. 화를 참지 못한다. 질풍노도 10대 같은 노인들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노소갈등이 심화된다. 젊은 세대들은 아르바이트 등으로 힘들게 학비를 벌어가며 스펙을 쌓아도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다. 그런데도 고령세대들을 위한 미래의 부담은 고스란히 짊어져야 한다. 그런 판국에 이 원장 같은 기성세대가 '새파랗게 젊은' 운운하면 반감만 더한다. 어르신이 아니라 '꼰대'로 취급한다. 고령세대는 젊은 층의 미숙함을 보기보다는 자신의 원숙함을 돌아봐야할 시대다. 노년을 왜 숙년(熟年)이라고 하겠는가.
수석 논설위원 chans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