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세상읽기] 응보적 정의와 회복적 정의 /천종호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09-25 19:33:02
  •  |  본지 30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15세의 소년이 몇 건의 절도 비행을 저질러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의 비행전력은 많지 않았으나, 이 시점에서 비행을 멈추지 않으면 더 나빠질 것 같기에 피해자들을 직접 찾아가서 피해를 변상하고 용서를 받아오라고 하였다. 소년은 보호자와 함께 피해자들을 찾아가 그렇게 이행하고 그 증거로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탄원서 중 특이한 내용이 있었다. 다른 탄원서는 소년이 용서를 빌고 피해도 변상했으므로 선처를 바란다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그 탄원서에는 '절도 피해를 본 후 다시 피해를 볼지 모른다는 생각에 집을 비우기가 겁이 났고, 밤에 잠을 잘 때도 너무 불안해 일상생활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피해보상을 위해 찾아온 범인이 어린 소년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마음이 놓인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정의는 시정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로 나뉘는데, 사법을 통해 배분적 정의를 실현함에는 사법기관의 기능에 따른 한계가 있다. 사법기관은 주로 사회적 가치가 부당하게 침탈되거나 왜곡 분배되는 경우에 사법작용을 통한 원상회복과 그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게 하는 시정적 정의의 실현에 적합하다. 사법작용에서의 시정적 정의는 응보적 측면과 회복적 측면으로 나눌 수 있다. 응보적 측면이란 예를 들어 범죄 또는 비행을 저지른 자에 대하여 형벌 등을 통해 그가 저지른 행위에 맞는 조치를 가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 민사사건에서 논의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도 응보적 성격이 강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회복적 측면은 사건 피해에 대한 원상회복 또는 보상을 하게 하거나 관계회복이 이뤄지게 하는 것이다.

현대 사법에서 '응보'를 인정하는 밑바탕에는 가치 침탈이나 왜곡이 발생했을 경우 그것이 분배질서를 해친 것임을 행위자와 일반 사회인에게 알려서 기존의 분배질서를 지켜나간다는 이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사법정의가 가해자에 대한 응보에만 머무르게 되면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시정적 정의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피해자들의 회복이 오히려 더 강조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 착안해 최근 사법영역에서는 회복적 정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 비행소년으로 하여금 피해자를 찾아가 피해를 변상하고 용서를 빌고 오라는 것도 회복적 정의 측면에서 보면 그 의의가 크다.

회복적 정의론에 따르면 범죄는 관계 파괴행위이므로 회복되어야 할 것은 '관계'이다. 다시 말해 관계회복이 정의론의 핵심을 이룬다. 회복되어야 할 관계 중 가장 우선적인 것은 범죄의 직접 당사자인 피해자와의 관계이다. 피해자와의 관계회복을 위해서는 피해자의 정신심리적 회복 다시 말해 범죄로 인한 트라우마의 치유가 전제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필요하다면 사회공동체가 나서서 치유에 따른 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

또 범죄의 직접적인 피해자 외에도 범죄로 인해 사회구성원 전체와의 관계가 깨진 것으로 보므로 사회와의 관계회복도 요청된다. 이는 사회구성원들이 범죄자들에 대해 개별적인 판단은 미뤄둔 채 그들 모두를 '전과자'라고 부르며 선입견을 가지는 태도에서 벗어나는 것부터 시작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것은 범죄자와 그 가족과의 관계회복이다. 범죄를 저지르고 그에 맞는 벌을 받은 자들이 겪는 고충 중 가장 큰 것은 가족과의 관계회복이다. 이것이 제대로 되지 못해 출소 후 가족들을 향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하고 여기에도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용서와 관용이라는 소년법의 기본정신이 제도 운영에서 제대로 실천되기 위해서는 소년사법에 있어서도 응보 외에 회복이 강조되어야 한다. 보호소년들을 위한 대안가정인 '사법형 그룹홈'의 공식 명칭을 '청소년회복센터'라고 한 것도 회복적 정의를 소년사법에 실천하기 위함이다. 이 센터는 피해자와의 관계회복을 등한시하지 않는다. 피해변상이 미진한 상태에서 소년이 위탁된 경우에는 그 이후라도 피해변상을 완료하도록 지도한다. 또 소년들을 학교에 보내거나 검정고시 준비를 시키거나 아르바이트 자리나 직장을 알선하는 등으로 소년이 건전한 사회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빠뜨리지 않는다. 더 나아가 보호소년과 그 가족과의 관계회복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고, 실제로 가족관계가 회복되어 일탈을 멈춘 소년들도 꽤 있다.

응보와 회복은 정의 실현에 있어 바늘과 실이 되어야 한다. 응보에만 치중하지 않고 응보를 하기 전후에 사회적 관계의 회복까지 도모하는 회복적 정의가 우리 사회 전반에 정착되어 가기를 소망한다.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건강한 부산을 위한 시민행동 프로젝트
많이 본 뉴스 RSS
  •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부산정치인의 말말말
부산정치인의 말말말-오거돈 부산시장
부산정치인의 말말말
부산정치인의 말말말-박인영 부산시의회 의장
강동수의 세설사설 [전체보기]
노란 조끼, 브렉시트, 그리고 리더십의 실종
시간강사 거리로 내모는 ‘시간강사법’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북항은 진정한 부산의 미래가 되어야 한다
사라진 가야문명의 귀환을 고대하며
기고 [전체보기]
물고기도 살아 있는 생명체다 /정성문
물류허브항, 싱가포르를 벤치마킹하자 /박희정
기자수첩 [전체보기]
위험사회의 민낯 /이승륜
들러리로 희생된 선수들 /박장군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명연설이 듣고 싶다
청산리 벽계수야, 저 바다에 가보자꾸나
김정현 칼럼 [전체보기]
학생 학교 선생
‘나는 할 말이 없데이…’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향하여 /정옥재
‘사법 농단’ 법관을 탄핵하라 /송진영
도청도설 [전체보기]
‘비정규직 전투식량’
우주여행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허수경 시인을 떠나보내며
가을과 두 분의 시인
박무성 칼럼 [전체보기]
국민의 눈높이
‘밥 한 공기 300원’의 미래
사설 [전체보기]
여야 선거제도 개혁 합의…알찬 성과 이뤄내길
정부의 남북 수산·해양협력 본격 추진 기대된다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출산 절벽시대 ‘인구 장관’ 필요하다
수술대 오른 사회서비스(보육·교육·의료·요양) 공공성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심상찮은 청와대의 조짐
길 잃은 보수 대통합
부강한 진주 행복한 시민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