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 3년간 있어 보니 똑똑한 직원들이 많아요. 모두 열심히 할 테니 앞으로도 많이 도와주세요" 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한국거래소(KRX) 최경수 이사장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정찬우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단독 추천돼 '낙하산 논란'이 일고 있는 새 이사장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런데 최 이사장의 말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똑똑한 직원들 가운데 '이사장감'은 없는 걸까? 왜 항상 이사장 임기가 끝날 때쯤이면 '낙하산'이라는 말이 나오는 걸까. 최 이사장의 말대로라면 20년 넘게 거래소 업무에 통달한 똑똑한 직원 중 누군가가 이사장으로 승진하면 되는 것 아닌가?

얼마 뒤 한 금융공기업 임원으로부터 궁금증을 해결해줄 만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선거에서 이기면 자기들 자리라고 생각하는 정치권도 문제지만 우리도 잘못한 게 많아요. 일단 사장 임기가 끝나가면 으레 누가 누가 온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그럼 노조는 반사적으로 '낙하산 인사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요. 그런데 그게 끝입니다. 얼마 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논란은 끝나 있습니다. 직원들 모두 당연히 외부에서 오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죠. 어느 순간부터 내부 승진은 아예 생각을 안 하게 됐어요"

실제 거래소를 비롯해 부산에 본사를 둔 금융공기업과 부산시 산하 공기업만 보더라도 내부 승진은 전무하다. 공기업은 취업준비생에게 최고의 직장으로 꼽힌다. 그만큼 합격자의 '스펙'이 다른 직장과 비교해 우수한 편으로 분류되는 데도 말이다. 앞에서 언급한 임원의 말처럼 직급이 높아지고, 보수가 많아질수록 지금의 자리에 안주하는 철밥통 문화 탓이다.

낙하산이라고 반드시 부정하다고 볼 수는 없다. 해당 기관에 필요한 전문성을 가진 인사가 들어와 조직의 쇄신과 발전을 이끌 수 있다면 외부 수혈도 필요하다.

그러나 정찬우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처럼 그간 박근혜 대통령 주변 인사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지난 20대 국회의원 선거 때 새누리당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한 전력이 있어 금융투자업계와 지역사회 안팎으로 '부적절한 인사'로 평가받는 인사가 오는 것은 옳지 않다.

거래소(9월 30일) 외에도 예탁결제원(11월 27일), 한국자산관리공사(11월 17일), 기술보증기금(내년 1월 13일) 등 금융공기업의 후임자 인선 절차가 잇따른다. 그릇이 안 되는 낙하산 인사를 막기 위해서는 이들 기관의 임원들부터 변해야 한다. 조직의 발전을 위해, 후배들을 위해 나서 줄 용기 있는 선배가 필요하다.

경제부 기자 lighthou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