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강명관 칼럼] 사마천의 궁형과 스스로 환관이 된 사내

불후의 역사서 '사기' 완성 위해 궁형 선택한 사마천

권세 좇아 스스로 거세한 조선 성종시대 환관과 대비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09-08 19:11:54
  •  |  본지 30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사마천(司馬遷)의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은 태사령(太史令)이었다. 기원전 110년 한나라 무제(武帝)가 산동의 태산에서 하늘과 땅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봉선의식(封禪儀式)을 거행하고 연호를 원봉(元封)이라고 바꾸었다. 사마담은 낙양에 머무르고 있어 봉선의식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지금의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사관으로서 자부심이 높았던 사마담에게 그것은 더할 수 없는 치욕이었고, 번민 끝에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죽기 직전 아들에게 자신이 평생 쓰고자 했던 '춘추' 이래의 역사를 써 줄 것을 당부했다. 3년 뒤 사마천은 사마담을 이어 태사령이 되었고 '사기'를 저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기원전 99년 무제는 이광리에게 기병 3만 명을 딸려 보내고, 이어 공손오를 추가로 보내어 둘이 합류한 뒤 흉노를 치게 했지만 별다른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이에 다시 이릉(李陵)에게 보병과 기병 5000명을 맡겨 흉노를 치게 하였다. 이릉은 흉노 1만 명을 죽이는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이내 식량과 무기의 부족으로 후퇴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릉은 후퇴하면서 싸웠으나 포위되고 말았다. 구원병이 올 가능성도 없었으니, 항복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이릉의 항복 소식을 전해 듣고 무제는 길길이 뛰며 이릉의 어머니와 처자를 죽이려 하였다.

모두 눈치만 보고 있는데 오직 사마천만이 이릉을 변호했다. 분노한 무제는 사마천을 사형에 처하라 명했다. 돈 50만 전이 있으면 사형을 면할 수 있었지만, 가난한 사마천은 그런 돈을 낼 수 없었다. 사마천은 사형 대신 궁형을 받았다. 궁형은 남자의 고환을 실로 묶어 떨어져 나가게 하는, 워낙 치욕적인 형벌이었다.

사마천이 죽지 않고 궁형을 받은 것은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사기'를 쓰기 위해서였다. 그는 모든 고전적 저술이 마음속 울분의 소산물이라 여겼다. 좌구명은 실명하고 '국어'를 썼고, 손빈은 방연(龐涓)의 계략에 걸려 다리를 잘린 뒤 병법서 '손자'를 쓰지 않았던가.

사마천 역시 울분을 가슴에 담고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불후의 역사서 '사기'를 썼다. '사기'에서 사마천은 인간을 깊이 탐구했다. '사기'를 통해 우리는 역사 속에서 살아 있는 생동감 넘치는 다양한 인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사건사가 아니라, 인간 본질에 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삼고 있는 개인과 사회에 대한 웅장한 보고서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사기'는 지금도 읽히는 고전이 되었다.

조선 성종 때다. 성종은 환관 대여섯 명과 민간의 일을 이야기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평소 가까이 두고 부리는 사람이라서 그랬는지 그날 특별히 환관들에게 고기요리를 주라고 명했다. 그런데 한 환관이 사양하며 먹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그날이 국기일(國忌日)이기 때문에 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국기일이란 왕이나 왕후가 죽은 날을 말한다. 이날은 보통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고기와 술을 먹지 못한다. 어느 왕 혹은 왕후가 죽은 날인지는 모르겠지만, 환관은 그 원칙을 떠올린 것이었다.

성종은 기분이 언짢았다. "그래, 국기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돌아가신 그 분은 나와 세대가 멀기 때문에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 돌아가신 분이 네 아비라도 된다는 말이냐? 물러가라!" 국기일은 맞지만 먼 조상이다. 관계가 멀어지면 굳이 엄격하게 지킬 것까지는 없다. 생각해 보라. 왕과 왕비가 도대체 몇인가. 그들이 죽은 날 금기를 온전히 다 지키려면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될 터이다.
그 환관이 쫓겨나자 다른 환관들이 그 자의 내력을 말했다. 그 사내는 원래 함흥의 천민이었다. 어느 날 동무들과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어떤 환관이 왕명을 받들고 함흥으로 온 것을 보았다. 환관은 때깔 좋은 말을 앞세웠고, 그 앞에는 주홍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팔을 불며 엄숙하게 길을 인도하고 있었다. 몹시 부러워하는 사내를 보고 옆에 있던 다른 나무꾼이 "저 사람은 환관인데도 그 귀한 것이 이와 같구나" 하고 일러주었다. 사내가 어떻게 하면 환관이 될 수 있느냐고 물으니, 그 나무꾼은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사내는 돌아와 스스로 거세하고 환관이 되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성종은 "그렇다면 상서롭지 못한 자로구나!" 하고 그 환관을 쫓아내었다.

환관이 되는 경로는 다양했다고 한다. 날 때부터 혹은 어릴 적 사고로 인해 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이 환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유아 때 부모가 거세하여 환관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환관 자리가 부러워 스스로 거세하는 경우는 아주 특별한 예외적인 경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성적인 능력이 없다는 것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황제의 위엄에도 굴하지 않고 곧은 소리로 이릉을 변호하다가 궁형의 치욕을 당했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고 치욕을 견디며 가슴속에 울분을 품고 불후의 저작 '사기'를 썼다. 조선 성종 때의 한 사내는 환관의 옷과 위세가 부러워 스스로 자신에게 궁형을 베풀었다. 그가 왕이 주는 고기요리를 국기일을 핑계대면서 거부한 것이 진정한 충심의 발로였을까? 다만 권력에 빌붙으려고 하는 아부요, 아첨이었을 뿐이다. 그 환관은 사마천과 동일하게 불행한 신체를 가졌지만, 그 생각과 행동은 정반대라 하겠다.

   
살아오면서 사람이란 존재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게 된다. 먼 곳 사람의 소식은 신문이며 방송으로 전해 듣고 가까운 곳의 사람은 직접 만나거나 보게 된다. 사마천 같은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고, 스스로 자신의 성기를 제거하는 환관만 숱하게 보았다. 성종은 명군이었기에 아첨하는 환관을 내쫓았다. 지금 세상은 어떤가. 어리석은 나는 알 수 없으니, 현명한 독자께서 모쪼록 알려주시기 바란다.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건강한 부산을 위한 시민행동 프로젝트
많이 본 뉴스 RSS
  •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부울경 국회의원에 듣는다
민홍철 국방위원회 민주당 간사
부울경 국회의원에 듣는다
이채익 행안위 한국당 간사
강동수의 세설사설 [전체보기]
‘한반도 비핵화’ 탈출로 찾아내야 할 평양 정상회담
어른들은 모르는 방탄소년단의 ‘방탄’세상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활력이 넘치는 교토의 특별한 비밀
부산에 누워 있는 에펠탑이 있습니다
기고 [전체보기]
‘Going Together’ 캠페인으로 선진 정치문화를 /이대규
리차드 위트컴 장군과 세계시민정신 /강석환
기자수첩 [전체보기]
‘김지영 논란’ 유감 /이승륜
한국당 부산의원, 더 반성해야 /정옥재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생활 SOC: 천사도 디테일에 있다
한여름의 몽상: 부산의 다리들이 가리키는 ‘길’
김정현 칼럼 [전체보기]
‘미스터 션샤인’ 오해
통일 vs 평화공존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김경수·오거돈 선거공약 1호 운명은? /김희국
시, 독립투사 발굴 앞장서야 /유정환
도청도설 [전체보기]
폼페이오 추석 인사
백두에 선 남북 정상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고요한 물
폭서(暴暑)와 피서(避暑)
박무성 칼럼 [전체보기]
‘밥 한 공기 300원’의 미래
교육부가 만드는 ‘대학 살생부’
박창희 칼럼 [전체보기]
서부산 신도시, 누구를 위한 것인가
사설 [전체보기]
공급 확대로 선회한 주택정책, 지방은 뭔가
법원행정처 폐지 사법부 개혁의 시작일 뿐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국민연금 개혁, 공론조사가 필요하다
지금 ‘복지국가 뉴딜’이 필요하다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미친 집값과 서울 황폐화론
포스트 노회찬, 정의당만의 몫일까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