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구간과 최고구간 요금 차이 11.7배'.

우리나라 가정용 전기요금은 누진제다. 올여름 유례없는 폭염 속에 가정용 전기요금에만 부과되는 누진제를 개편하자는 목소리가 거세다. 기자는 7년 전 겨울, 누진제의 무서움을 체험했다. 당시 첫 아이를 낳고 몸조리를 하던 집은 중앙집중식 난방을 하는 아파트였다. 난방은 되는데 온기가 별로 없었던 탓에 전기난로를 들여 따뜻한 겨울을 보냈다.

하지만 다음 달 중순 전기료 고지서에 찍힌 요금을 보고 기겁했다. 평소의 15배(40만 원대)에 달했기 때문이다. 한전의 실수를 따지겠노라며 의기양양하게 전화를 했다가 누진제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부랴부랴 난로 사용을 줄였지만 그다음 달도 30만 원에 육박한 요금을 물어야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가히 '폭탄' 수준의 전기요금에 부글부글 끓고 있다. 40년 전 만들어진 과도한 누진제 탓에 요금 '날벼락'을 맞은 가구가 속출하자, 한전이 서민의 등골을 빼먹는다는 비난이 빗발친다. 누진제 개편 정책은 1999년 공식 제기된 이래 17년간 입안과 폐기를 반복했다. 정부는 더위가 절정에 이르는 8월이면 누진제 개편 카드를 꺼냈다가 폭염이 꺾이고 여론이 잦아들면 슬그머니 없던 일로 하는 '양치기식 행정'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현행 가정용 전기요금 체계는 총 6단계로 구성돼 있다. 최저 누진구간인 1단계(1㎾/h=60원)와 최고 구간인 6단계(1㎾/h=709원) 사이의 요금차가 무려 11배 이상이다 보니 가정은 15%의 전기를 쓰고도 23%의 요금을 내야 한다.

반면 산업용과 일반용(상업용)은 산업 발전, 자영업 지원이라는 명분으로 누진제에서 제외됐다. 산업용 요금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대비 70~80%이다. 이 때문에 기업은 전기 사용량의 57%를 쓰고 요금은 55%만 부담하는 혜택을 누린다.

그렇다고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기도 쉽지 않다. 전국경제인연합 측은 2000년 이후 전기요금이 15차례 오르면서 산업용 요금의 인상률(84.2%)이 주택용(15.3%)보다 더 높았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가뜩이나 어려운데 전기요금까지 오르면 가격 경쟁력 저하는 물론 물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한전은 지금 사상 최대의 이익을 보고 있다. 올 상반기 영업이익만 6조3098억 원이다. 영업이익률은 삼성전자보다도 높은 21.7%다. 낮아지는 전기 매입 가격, 변함없는 판매 가격에 판매량까지 급증해 '호황의 3박자'가 맞아떨어졌다.

전문가들은 누진제가 완화되더라도 급격한 전기 사용량 증가에 따른 전기 부족 사태는 오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생산 원가가 저렴한 원자력 설비 및 대용량 석탄화력 설비가 확보돼 있어서다. 이 때문에 한전의 수익 구조도 유가 등락과 상관없이 지속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민들은 한시적인 누진제 구간 확대가 아닌 시대에 맞는 합리적인 제도를 원한다. 정부는 누진제 완화정책에 따라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저소득층에게는 에너지 바우처 제도 등 지원책을 마련하고, 전력 피크를 대비한 고효율 가전제품 개발이나 가정용 태양광에너지 확대 등 에너지 저감 정책을 강화하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신재생 에너지 산업 육성책과 원전 해체 산업 등 신산업도 장려해야 할 것이다. 낭비를 막겠다는 미명 아래 징벌적 누진제로 국민을 억압하려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은 더는 참을 수가 없다.

경제부 차장 iej0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