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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자긍심과 '국뽕' /염창현

도 넘은 애국심 고취, 지나친 자기 비하…모두가 국민에게 독

좌우 균형감각 갖춰야 민족 발전 담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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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한 나이가 되니 세상 흐름을 따라가기가 힘들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닌 곳에는 눈이 덜 쏠린다. 텔레비전을 켜도 볼 만한 것이 별로 없다. 요즘 대세라는 '먹방' 프로그램도 별로고, 연예인이 떼로 나오는 오락물도 그저 그렇다. 지인들은 '영락없는 아재'라고 놀리기 일쑤다. 딴에는 아재가 되지 않으려 노력을 하기도 한다. 혹시 젊은이들과 소통부재가 생길까 신조어 습득에도 힘을 쏟는다.

요즘은 '국뽕'이라는, 어감이 별로 좋지 않은 단어를 자주 접했다. 물론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신조어다. 헬조선, 노오력, 금수저, 흙수저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국뽕은 요령부득이어서 서둘러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국가'와 '히로뽕'의 합성어라 한다. 국가에 대한 자부심에 지나치게 몰입되어 있는 상태를 일컫는다는 설명이 달려 있다. 반대말도 있다. 인터넷상에서는 무조건 국가를 비하하는 사람이나 행동을 '국까'라 부른다. '국가'와 '까다'의 합성어다.

'국뽕'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지는 몇 년 전이다. 그런데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인천상륙작전' 덕분에 다시 유행어가 됐다. 몇몇 평론가가 작품성은 고사하고 반공선전물에 가까운 '국뽕 영화'라고 혹평을 하고부터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에 대한 지나친 미화, 연합군은 선(善)·북한은 악(惡)이라는 이분법적 구조 등이 일반적인 상업영화의 틀을 벗어났다는 게 비판의 주요 내용이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덕혜옹주'도 역사를 부분적으로 왜곡했다며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 일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한 역사적 근거가 없는데도 영화상으로는 덕혜옹주가 마치 항일운동을 한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는 이유다. 이러다보니 누적 관객 1700만 명과 1400만 명을 넘어섰던 '명량'이나 '국제시장'마저 이런 범주에 포함되는 실정이다. 반대로 영화는 영화일뿐이라며 이런 평가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인터넷상에는 이 문제를 둘러싼 찬반양론이 이어지는 중이다.

최근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8·15 경축사가 '국뽕 연설' 논란에 휘말렸다. 과거 개발독재체제에서나 통용되던 '안되면 되게 하라'는 정신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다. 박 대통령은 언제부턴가 우리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잘못된 풍조가 퍼지고 있다며 개탄한 뒤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도전과 진취, 긍정의 정신을 되살려 재도약하자고 촉구했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은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 '어려운 시기에 콩 한 쪽도 서로 나누며 이겨내는 건강한 공동체 문화' '한강의 기적' 등을 언급했다.

말인즉슨 틀린 것은 아니다. 자기비하를 벗어나 진취적이고 적극적으로 미래를 개척하자는 주문은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 축사는 대체로 국민정서와 거리가 멀다. 역대 최고 수준의 청년 실업률에다 심화되는 사회 양극화 등의 현실은 외면한 채 '우리는 위대한 대한국인'이라는 식의 애국심 고취는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밖에 없어서다. 올해 8월 15일을 '71주년 광복절이자 건국 68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이라 한 축사 내용도 '국뽕' 논란을 불러일으킨 요소다. 정부수립일인 1948년 8월 15일이 건국절이라는 주장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골수 보수세력의 입장일 뿐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현재 진행 중인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도 '국뽕'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과거보다 나아지기는 했다지만 우리나라 선수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여전하다. 언론은 금메달 개수가 이전에 비해 적자 마치 국력이 쇠퇴한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극적으로 금메달을 딴 선수의 "할 수 있다고 되새겼다"는 한마디는 우리 민족의 저력을 나타낸 것이라며 귀에 못이 박힐만큼 되풀이해 방송된다. 그마나 다행스러운 것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젖먹던 힘까지 다했다는 식의 상투적인 소감은 거의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제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께 승리와 영광의 보고를 드렸다고 생각하니 뭔가 끓어오르는 기분이 들었다"는 북한 체조 금메달리스트 리세광의 말에 우리도 배꼽잡고 웃을 정도로 성숙해졌다는 증거일 터다.

'국뽕'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부심, 자긍심과 맥을 같이 한다. 조국에 대해 무한한 자긍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국민의 당연한 도리다.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시상대 맨 꼭대기에 오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런 마음가짐이 과도한 집착으로 이어지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래서 사회학자들은 '국뽕'은 자긍심이 아니라 열등감과 불안감을 숨기기 위한 과장된 표현이라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객관성을 상실한 나라사랑은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가져온다. 영화와 스포츠야 안 보면 된다지만 대통령의 한마디는 그저 흘려 들을 수도 없다. 물론 균형감각을 갖춰야 한다는 당위성은 지나치게 우리나라를 낮추는 '국까'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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