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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 칼럼] 누가 개혁을 막는가

조선 토지정책 실패한 이유는 권력자들이 지주였기 때문

오늘날 대한민국의 개혁과 변화를 막는 이들은 누구인가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08-11 19:09:30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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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6년 3월 21일 영조는 희정당의 석강에 참여했다. 왕의 저녁 공부다. 동지사 원경하(元景夏), 특진관 이세진(李世璡), 참찬관(參贊官) 홍계희(洪啓禧) 등이 참석했다. 여러 이야기가 오가던 중 홍계희가 자신이 읽은 '농정전서(農政全書)'(明, 徐光啓)는 백성의 생활을 풍족하고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방법을 자세히 써 놓은 책인데, 특히 흉년 대비책도 소상하다고 말했다.
영조는 '농정전서'를 본 적이 없다면서 어떤 책인지 물었다. 홍계희는 명나라 사람의 저작으로 아주 볼 만한 책이라 답했다. '농정전서'가 꼬투리가 되어 황정(荒政, 흉년에 대비하는 정책)에 대한 조선 지식인의 대비책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홍계희는 선비로 일생을 마쳤던 유형원(柳馨遠)이 조선의 황정에 대해 비판한 것이 아주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유형원의 비판을 요약하자면, 조선은 흉년이 들고 난 다음 굶주린 백성을 구휼하려 할 뿐이고, 미리 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계희를 이어 원경하가, 유형원의 아버지 유흠이 여양부원군 민유중과 사촌지간이라는 것, 또 그가 연원부원군 이광정의 외손이라는 것 등등 유형원의 족보를 읊었다. 사족 사회에서는 친족 계보 속에서 한 개인의 사회적 위상을 파악할 수 있기에 굳이 유명한 인물인 민유중과 이광정을 꼽았던 것이다. 원경하는 이어 유형원의 '반계수록(磻溪隧錄)'이 다양한 경세론을 담고 있고, 홍계희가 이 책을 아주 좋아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원경하의 '반계수록'에 대한 판단이다. "참찬관(홍계희)은 이 책을 시행할 만하다고 하지만, 신은 우활한 선비의 주장이라 적용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고 하였다.

'반계수록'은 임병양란 이후 모순을 노정한 조선 사족체제를 개혁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가득 담고 있는 책이었다. 그런데 원경하는 우활하여 현실에 적용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 개혁책이 비현실적이고 따라서 쓸모없는 책이란 뜻이다. 원경하는 '반계수록'은 전정(田政)과 군정(軍政)에 대해서 모두 입론한 바가 있지만, 다만 설폐(設弊)에 능하고 구폐(救弊)에는 졸렬하다고 했다. 즉, 문제점은 정확하게 지적하지만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는 무능하다는 뜻이다. 영조가 예를 들어보라고 하자, 전정은 정전제(井田制)를, 군정은 거전(車戰, 수레를 사용하는 전투법)을 해결책으로 삼았는데, 거전은 중국에서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영조는 그거야 장수가 원용하기 나름이 아니냐고 반박했다. 꼭 같은 배수진을 쳤지만, 한신(韓信)은 조(趙)나라와의 전투에서 이겼고, 신립(申砬)은 임진왜란 때 달천에서 왜군에게 패배했다는 예를 들면서 말이다.

정작 문제 삼고 싶은 것은 전정(田政) 쪽이다. 원경하는 '반계수록'의 전정에 대해서 단지 정전제를 시행하고자 했다 하고 다른 말이 없는데, 그것은 정전제가 실제 적용 불가능한 것이라는 의미다. 정전제는 주대(周代)의 토지제도다. 정전제에 의하면 모든 농민은 같은 면적의 토지를 지급받아 경작하고 그 수확물을 갖는다. 그리고 여러 가구가 따로 마련된 토지를 공동으로 경작하여 그 수확물을 세금으로 낸다. 정전제는 농민에게 경제적으로 균등한 삶을 약속했던 것이다.

유형원 역시 정전제를 이상적인 제도로 판단했다. 하지만 고대 중국의 제도가 조선에 그대로 적용될 리 만무다. 그가 정전제를 그대로 고집하지는 않았던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는 정전제의 정신을 그대로 살려 모든 토지를 공공의 토지로 만들어 농민에게 일정한 생활을 보장할 수 있도록 토지를 균등하게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공전제(公田制)다.
'반계수록'의 공전제는 시행되지 않았다. 아니 시행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른바 겸병가(兼倂家)라고 대지주(大地主)들의 토지를 몰수하는 대담한 개혁이었기 때문이었다. 원경하는 당시의 토지제도에 엄청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예컨대 토호들이 국가에 보고하지 않는 면세전(免稅田)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하였다.

그런 그가 유형원의 토지개혁론을 반대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던가. 그 역시 지주계급의 일원이었기 때문이었다. 효종의 사위인 원몽린의 손자인 원경하는 홍문관·승정원 벼슬을 다 지내고 경연관이 되어 영조의 신임을 톡톡히 받았다. 거기다 아들 원인손은 우의정까지 올랐으니 명문 중의 명문이고, 귀족 중의 귀족이다. 그런 그가 무엇이 아쉬워서 자기 땅을 모두 내놓아야 하는 공전제에 찬성한다는 말인가.

유형원의 공전제 뿐만이 아니었다.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농민을 땅에서 내몰아 유민을 만들고 도둑을 만드는 소수 대지주의 토지겸병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전제, 한전제(限田制), 균전제(均田制), 여전제(閭田制) 등의 토지제도 개혁안이 백출했다. 하지만 어떤 것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들 중에서 개인의 토지 소유 상한선을 정하자는 한전제는 지주의 땅을 몰수하지 않는 제도였지만, 그 역시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토지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조정에서 실천을 염두에 두고 진지하게 검토하고 토론하고 논란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모두가 안 될 것이라는 말 뿐이었다.

왜냐? 조정의 권력을 쥔 자들이 이미 광대한 전지(田地)를 소유하고 있는 지주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원경하가 카르텔을 형성하여 이 핑계 저 핑계,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토지개혁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실천적인 대안을 내놓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지주로서 부(富)를 누리며 세월을 흘려보낸 것이 그들이 했던 일이었다. 조선은 그렇게 병들어 가다가 19세기 말에 제국주의 열강의 먹잇감이 되었고, 마침내 한 번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어떤가. 누가 개혁을 막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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