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저는 박테리아의 일종인 탄저균(바실러스 안스라시스)에 의해 발생하는 감염성 질병이다. 그리스어로 'anthrax(석탄)'라고 한다. 피부에 탄저균이 감염되면 감염부위가 석탄처럼 검은색을 띤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일반적으로 8000~3만 개체의 탄저균에 감염되면 탄저에 걸릴 수 있다.
탄저균은 주변의 땅속에서 서식하므로 탄저는 주로 풀을 뜯어먹는 소나 양, 염소 등의 초식동물에 감염돼 발생한다. 하지만 감염된 동물을 접촉한 사람도 감염될 수 있으며, 가축을 방목하는 지역에서는 비교적 흔하게 탄저가 발생한다. 그리고 탄저에 걸려 죽은 소를 먹은 사람이 탄저에 걸리기도 한다. 다행히 탄저는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우리가 탄저균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서는 가축에 백신을 투여하거나 탄저에 걸린 가축과의 접촉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또 감염을 막기 위해 사람도 백신을 맞을 수 있는데, 이 경우 탄저균에 대해 약 93%의 보호효과가 있다.
탄저균은 크게 세 가지 경로를 통해 우리 몸을 감염시킨다. 첫 번째 경로는 피부에 접촉해서 감염시키는 경우(피부 탄저)로, 2~3일의 잠복기가 끝나면 벌레에 물린 것 같은 상처가 생기고, 나중에는 궤양이 된다. 피부탄저의 경우 치료를 받지 않으면 감염자의 약 20%가 사망한다. 피부탄저에 걸리면 감염부위에 깨끗한 거즈를 얹고, 시프로플록사신 페니실린 등의 항생제를 투여해서 치료한다. 두 번째 경로는 탄저균에 감염된 육류를 섭취했을 때 발생(위장관 탄저)한다. 이 경우 복통과 구토, 발열증상을 동반하며 치사율은 25~65% 수준이다. 세 번째 경로는 호흡기를 통한 감염(호흡기 탄저)으로, 보통 감염 후 24시간 이내에 사망한다. 호흡기 탄저는 조금만 항생제 치료가 늦어도 환자가 사망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항생제인 시플로플록사신을 고단위로 60일 이상 투여한다.
탄저균의 감염경로 중 치사율이 가장 높은 호흡기 탄저는 생물무기 또는 바이오테러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2001년 9·11 사태에 뒤이어 발생한 우편물테러는 편지봉투 속의 탄저균 가루에 의해 건물 안에 있는 사람 중 20여 명이 감염되고, 5명이 사망했다. 이때 사용된 탄저균의 양은 1g 정도로, 실험실 규모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우편물 테러는 자살 테러처럼 어려운 방법을 이용하지 않고도 불특정 다수에게 공포를 가하기에 너무나 쉽고 완벽한 방법이다.
탄저균이 생물무기로 적합한 이유 중에 하나는 내생포자를 만든다는 것이다. 병원성 미생물을 이용해 생물무기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할 사항은 병을 유발시키도록 활성을 유지하는 것과 원하는 지역에 살포해야 하는 방법이다. 병원성 미생물 대부분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기 어렵지만, 탄저균의 경우 일단 세포 안에 내생포자를 만들면 가능하다. 내생포자를 갖고 있는 탄저균은 장기보관이 가능하고, 살포하기도 매우 쉽다. 이들은 생장조건만 잘 주어지면 수천 년 동안 살아남을 수 있다. 내생포자 형태의 탄저균이 쉽게 공기 중에 떠다니다가 사람의 폐로 들어가면 호흡기 탄저를 일으킨다. 탄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염되지 않으므로, 특정 장소에 있는 특정한 사람만 살상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병원성 미생물에 의해 고통을 받고 있다. 특히 사스 바이러스, 에볼라 바이러스, 독감 바이러스 등 치사율이 높은 병원성 미생물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사람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들은 모두 생물무기로 개발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병원성 미생물을 이용한 생물무기는 다른 무기에 비해 개발비용이 저렴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병원성 미생물을 이용한 생물무기를 '가난한 사람의 핵폭탄'이라고 부른다.
인류 역사상 전쟁에 사용되어 치명적인 피해를 준 미생물들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지금은 생물무기를 이용한 테러가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병원성 미생물들을 악의적으로 활용해 생물무기를 개발하려는 시도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그들은 병원성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상대국가의 백신을 이용해도 효과가 없는 생물무기를 개발하려고 할 것이다. 백색가루의 공포, 탄저균 우편물테러와 같은 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해 제도적 조치와 대책 마련이 반드시 필요하며, 무엇보다 이러한 병원성 미생물로부터 지구상의 인류를 보호하기 위해 많은 과학자의 집중적인 연구가 절실히 요구된다.
인제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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