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답답하다. 내가 모르는 사람, 하지 않은 일에 대한 책임 얘기는 안 맞다고 본다."
좀처럼 기자들을 만나지 않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20일 오전 춘추관 기자실을 찾았다. 우 수석을 둘러싼 숱한 의혹의 진위 여부를 떠나 청와대 민정수석이 전·현직 검사장의 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이를 보도한 언론사와 소송까지 가게 된 상황이다. 자기 일로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누를 끼쳐 송구하다는 정도의 말은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50여 분간 이어진 그의 해명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은 당당함이었다. 우병우 수석은 "하지 않은 일 때문에 책임지고 사퇴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벼랑 끝에 몰려서였을까, 아니면 그의 말처럼 '전혀 모르는 일'들에 얽혀 의혹을 사게 된 억울함에서 나온 태도일까. '절대로' '아예' '확실히' 등 단정적 표현도 자주 등장했다.
우 수석은 검찰 수사에 응하겠지만, 가서도 "모른다"고밖에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과 경찰, 국정원 등 권력 기관의 최고 사령탑 자리인 민정수석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은 채 검찰 수사를 받겠다는 것이다. 권력기관 도처에 '우병우 사단'이 존재하고, 사실상 검찰의 인사를 주무르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는 가운데 과연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겠는가. 야당이 우 수석의 사퇴를 압박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었다. 우 수석이 '리틀 김기춘'으로 불리며 절대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박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우 수석은 야권이 박 대통령을 공격하는 빌미가 되고 있다. 야권은 연일 박 대통령이 우 수석을 해임하고 직접 나서서 설명해야만 검찰 비리에 대한 척결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대통령으로서도 매일같이 새로운 의혹이 터져 나오는 우 수석 사태를 안고 가기에는 부담이다. 처가의 강남 부동산 계약 현장에 없었다는 그의 말도 거짓으로 드러났다. '장모님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우 수석의 해명이지만, 여러 가지 의혹 중 하나에 대한 해명이 거짓으로 드러났는데, 우 수석의 다른 해명이 얼마나 신뢰를 받겠는가. 진경준 검사장-넥슨 커넥션, 홍만표 변호사와의 '몰래 변호' 의혹 등 지금까지 제기된 굵직굵직한 내용에 대한 의혹이 깊어질 뿐이다.
우 수석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퇴하지 않겠다'는 뜻을 강하게 밝힌 것은 박 대통령의 묵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21일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면서 대통령 자신도 요즘 비난과 저항을 받고 있다고 언급하며 "소명의 시간까지 의로운 일에는 비난을 피해가지 마시고 고난을 벗 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가시기 바란다"고 말하며 '우병우 구하기'에 나섰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녹록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집권 이후 문제가 됐던 인사파탄 문제를 돌아보고 우 수석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에 문제는 없었는지 한 번쯤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때다.
최근 며칠간 여야 정치권은 연일 불거지는 우 수석의 의혹사건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그러나 우 수석이 청와대 기자실을 직접 찾아 의혹을 해명한 이후 여당 내부에서도 "이제는 본인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등 '우병우 경질론'을 앞세운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지금 우 수석에게는 신뢰 잃은 해명보다 냉정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울정치부 차장 tgki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