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행위는 '말'이 실체다.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고, 정부 정책의 흐름을 결정짓거나 변경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영향력을 가진다. 이 때문에 정치인이 내뱉은 말은 국민과의 약속이 되고 책임이 따른다. 상황 변화도 국민의 이해와 양해를 구하는 노력이 진정성을 가져야 가능하다. 이런 측면에서 동남권 신공항 국면에서 보여준 서병수 부산시장·새누리당 김무성·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언행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서 시장은 동남권 신공항 용역이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정난 직후인 지난달 27일 정부 결정을 수용하면서 "시장직에서 사퇴하지 않겠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이로써 2014년 6·4지방선거 때 내건 '가덕신공항 무산 시 사퇴'라는 거취 문제도 일단락됐다. 당시 서 시장이 '직'을 건 것은 자신이 부산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적임자임을 '제발 알아달라'는 대시민 호소였다.

시민들은 이 호소를 믿었고, 지난 4·13총선 직후부터 '신공항 용역 불공정 논란'이 불붙자 서 시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이 때문에 '가덕신공항 유치전'은 부산국제영화제(BIFF) 사태, 해수담수화 공급 문제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서 시장의 시정 동력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서 시장의 공식 입장 발표 때 가덕신공항 유치전의 '주연'이었던 부산 시민들은 '조연'에 머물렀다. 한 달여간 부산을 위해 마음을 모았던 360만 시민들은 없었다. 시는 관행처럼 중앙 정부의 산하 기관급으로 돌아갔고, 서 시장의 거취도 '셀프 정리'로 마무리됐다. 정부 결정에 불복하고 서 시장이 사퇴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합된 360만 명'이라는 새로운 부산 발전의 동력을 살리지 못한 것에 대한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문 전 대표는 사실 가덕신공항의 최대 수혜자다. 하지만 책임은 외면했다. 측근인 전재수(부산 북강서갑)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문 전 대표가 '가덕신공항이 돼야 한다' 이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말장난'에 불과하다. 총선 때 부산 선대위 발대식에서 "5석을 주면 박근혜 정부 임기 내 신공항 착공을 이뤄내겠다"고 했고, 총선 이후 히말라야 트레킹을 가기 전에도 가덕도를 방문했다. 그런데 한 달여 만인 지난 9일 귀국한 문 전 대표는 "지자체 갈등을 일으킨 데 대한 정부의 사과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신공항 입장을 정리했다. 그의 발언 어디에도 부산 시민들에게 한 약속에 대한 양해는 없었다.

김 전 대표의 처신도 정치 지도자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김 전 대표는 당 대표 임기 초기인 2014년 9월 당내 '신공항 함구령'을 내린 이후 2년 동안 침묵했다. 그러다 지난달 21일 정부 발표 직후 "오래전부터 김해공항 확장이 최적의 방안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고 환영 입장을 밝혔다. 그는 신념에 따라 정부를 설득하고, 부산 민심을 다독였어야 했다. 하지만 정부가 신공항 용역 조사에 착수할 때도, 불공정 용역 논란으로 부산이 들끓을 때도 물러나 있었다. 김 전 대표는 그동안 정치권의 인기 영합적 행태에 극도의 불신을 보여왔다. 그런데 마지막에야 등장해 "잘된 일이다"고 한마디 던지는 행위가 포퓰리즘과 뭐가 다른가.

서 시장은 남은 임기 2년 동안 부산의 새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 김 전 대표와 문 전 대표는 차기 대한민국을 이끌 자산이다. '무신불립'(無信不立·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은 정치권에서 유행처럼 회자되는 말이다. 세 사람이 다시 한 번 이 말의 의미를 되새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울 정치부 차장 ya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