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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칼럼] 부산 문화·관광 '엄숙주의' 벗어던지자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문화로 이뤄진 상업·무역도시

대형행사·인프라 반대말고 '미래 먹을거리'로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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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6-07-07 19:02:51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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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선비, 양반의 도시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국제적 상업도시, 군사도시, 수산도시다. 특히 조선 후기 부산에서 도시 정체성을 이룬 집단은 상인이다. 이런 특성은 부산사투리에도 들어있다. 자갈치시장의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가 대표적이다. 이 표어는 높임말일까 낮춤말일까. 정답은 '둘 다 아니다'이다. 국어학자는 이것을 '등급 미정'으로 부른다. 원래 '오십시오'에 해당하는 경상도 말은 '오시이소'다. 여기서 높임의 어미 '시'가 빠진 '오이소'는 조선 후기에 계급 신분이 와해될 때 나타난 상업적 언어다. 즉 신분을 뚜렷이 나누지 않고, 반말도 높임말도 아닌 어중간한 말투로 장터 언어란 것이다. 이 언어가 담은 친근감은 지금도 부산 정서의 바탕이 되는 것 같다.
   
그림=김자경 기자
상업도시란 성격이 예술 발전을 가로막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다. 동래학춤이 탄생한 배경에는 동래 상인과 향리의 지원이 있었다. 유럽 오페라도 마찬가지다. 르네상스 정신에서 태어나 '태생적'으로 세속적 예술인 오페라는 이탈리아 상업도시 피렌체에서 만들어지고, 베네치아에서 번성했다. 뮤지컬을 완성시키고 꽃피운 곳도 미국 뉴욕이다. 상업도시가 현대 공연예술의 큰 줄기를 만든 셈이다.

■상업도시가 만드는 문화

베네치아, 뉴욕, 부산의 공통점은 '엄숙주의'를 벗어던졌다는 점이다. 이들은 항구도시와 상업도시의 특성에 따라 여러 지역과 계층의 사람이 뒤섞인 가운데 전통문화의 엄숙한 관례보다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특히 명문거족도 적고, 서원도 없던 부산은 새 도시로 거침없이 자라났고, 이 과정에 과거 경상도에서 강세를 보이던 유교 이념 대신 '개방 평등 융합' 정신을 형성했다.

부산이 '피란수도'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거리에서 자유롭게 젊음을 표출하는 '한국 비보이의 성지'가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부산은 국제관광도시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췄다. 이것은 국제시장에만 나가봐도 알 수 있다. 시장 상인이 유창한 외국어로 관광객을 환대하는 모습은 경탄을 자아낸다. 상인이 의사결정을 할 때는 철저히 이익을 따지지만, 한 번 결정하면 잘 바꾸지 않는다. 또 오랫동안 신뢰가 쌓이면 국적도 넘어선다. 과거 초량왜관도 왜인과 신용거래, 선물거래가 주요한 거래방식이었다. 어쩌면 조선통신사의 모토인 성신교린(誠信交隣, 성의와 믿음으로 이웃과 교류함)도 상인의 윤리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상업(무역)도시가 관광산업에서 앞서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다만 부산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자연경관이나 소규모 콘텐츠만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많이 끌어들이긴 어렵다. 세계적으로 관광산업은 '문화·공연산업 인프라 구축'을 통한 관광객 유치로 나아가는 추세다. 부산이 이런 일도 잘할 수 있을까. 필자는 '그렇다'고 본다.

문화·공연 인프라의 핵심은 콘텐츠와 시설이다. 먼저 콘텐츠의 측면에서 부산시가 올해부터 부산원아시아(One-Asia)페스티벌을 열기로 한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K드라마, K팝과 같은 한류 장르를 한 상에 차린다는 것. 또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산불꽃축제 기간에 맞춰 20일 넘게 지속되는 콘텐츠란 점을 높이 사고 싶다.

물론 거꾸로 보면 대형 행사와 겹치는 기간이란 점이 우려될 수 있지만, 관광도 융·복합시대를 맞았다. 한 가지 콘텐츠만으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집적화'가 관건이다. 콘텐츠 한 개는 '이벤트'로 그치지만 이들을 집적화하면 '산업'이 된다. 원아시아페스티벌이 부산의 먹을거리, 문화예술, 의료, 생태, 엔터테인먼트를 한 다발로 엮어 외국인을 모으는 매개체로 성장하기 바란다.

또 시설의 측면에서 부산시가 마침내 오페라하우스를 세우기로 한 것도 잘한 결정이라고 믿는다. 앞으로 관광산업에는 오페라와 뮤지컬을 모두 구현하는 세계적 수준의 공연장이 필수적이다. 다만 제대로 지어야 한다. 또 주변 환경이 중요하다. 싱가포르 복합문화예술센터 '에스플러네이드'가 성공한 것은 공연장 곁에 1500개의 상점으로 이뤄진 쇼핑몰, 미술관, 도서관, 문화 공간이 집적된 결과다.
부산 오페라하우스가 성공하려면 주변의 북항 공간도 잘 어우러져야 한다는 말인데, 마침 세계 최대 카지노 기업인 미국 라스베이거스 샌즈 그룹이 북항에 복합리조트 사업을 재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김해공항 확장비용에 맞먹는 5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하니 어쩌면 북항 공간 조성이 단번에 해결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오픈 카지노'(내국인 출입 허용)가 투자의 전제조건이란 게 문제다. 단지 이번에는 샌즈가 오픈 카지노 규제를 상당 부분 감수하겠다고 밝혀, 시민들의 기대를 모은다. 어떻게 하면 카지노에 내국인 출입을 최대한 막고, 샌즈의 투자를 이끌어낼 건가. 세기의 흥정이 벌어졌다.

■세기의 흥정

샌즈 그룹 회장인 셸던 아델슨은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의 선구자인 '벅시'(벤저민 시걸)와 마찬가지로 유대인이다. 유대인에게는 예로부터 '거래는 신성한 것'이므로 물건값은 정확하게 받아야 한다는 신조가 있다. 이 점에서 샌즈와 부산시의 흥정은 곧 세계 최고의 '유대인 상술'과 국제무역도시 부산이 벌이는 흥정이기도 하다. 철저한 상업 마인드로 좋은 거래를 성사시키기 바란다.

   
그동안 부산의 문화·관광은 어느 새인가 엄숙주의에 사로잡혀 도시의 건강한 '초심'을 망각한지도 모르겠다. 문화계 일부가 대형 행사와 인프라 조성에 '무조건'(?) 반대한 것도 그런 각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세금 낭비란 이유로 부산문화회관, 광안대교, 영화의전당 건립에 반대한 '그 많던 문화인'은 다 어디로 갔나. 문화예술과 함께하는 도시 관광, 공연시설, 복합리조트, 해양·크루즈관광, 컨벤션은 부산이 재도약하는 발판이고 '미래 먹을거리'다. 이 대명제를 부정하는 것은 곧 부산 문화계의 앞날을 부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화계도 지나친 경건주의에서 벗어나 국제무역도시에 걸맞은 마인드를 갖추기 바란다.

철학박사·필로아트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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