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라면 지역주민에 대한 애정이 아닌 집착수준이다.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한 뒤 자신의 잇속만 채우겠다는 처사다. 없는 사람에게 나눠주기는커녕 그나마 가진 것마저 빼앗으려 한다. 서두부터 무슨 말인가 궁금해 하실 터. 도를 넘어선 수도권 의원들의 비뚤어진 행태 이야기다.
20대 국회가 문을 연 지 한 달이 조금 지났다. 이 짧은 기간 수도권 의원들의 의정활동은 훌륭하다 못해 눈이 부실(?) 지경이다. 의원들이 입법을 위해 분주하게 뛰는 것을 누가 뭐라하겠는가. 눈에 거슬리는 바는 수도권 의원들의 분주함 아래 지독한 지역이기주의가 깔려 있어서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이라는 게 있다.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된 인구와 산업을 분산 배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1982년 제정됐다. 수도권 의원들은 이 법이 역차별을 불러온다며 그동안 줄기차게 뿌리를 흔들었다. 20대 국회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경기도 이천을 지역구로 하는 새누리당 의원은 국회 개원이 되자 기다렸다는 듯 지난 13일 '수도권정비계획법 폐지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률 자체를 아예 없애버리자는 의도다. 발의를 한 의원은 그 근거로 법 시행이 수도권 지역의 토지이용 합리화를 저해하는 것은 물론 세계 경쟁력이 있는 지역전략산업 육성을 막고 있다는 점을 거론했다. 근데 자신들이 봐도 이 법안이 무리가 있다 싶었던지 지난 23일에는 수위를 조금 누그러뜨린 '수도권정비계획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나왔다. 대표발의자는 인천 부평갑의 새누리당 의원이었다. 이 개정안에는 수도권의 범위를 서울, 인천, 경기의 시 지역으로 한정하고 군 지역과 경제자유구역 등을 제외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어 과밀억제권역과 공항, 항만 구역 등에서는 예외적으로 개발을 허용해야 한다는 문구도 들어 있다.
두 개의 법률안은 하나같이 수도권 규제 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겉으로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의 영향으로 낙후된 지역을 개발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해석하면 수도권 규제의 마지막 무기를 내려놓아라는 협박이나 다름없다. 발의 취지도 설득력이 없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이 30여 년 동안 수도권 변화를 반영하지 못해 주민의 행복추구권을 앗아갔다지만 대한민국에는 수도권에만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다. 특히 경제자유구역과 공항 등에서 개발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누가 봐도 인천을 염두에 둔 것임이 확연하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지역이기주의로 몰아붙이던 수도권 의원들이 인천은 더 키워야 한다고 말하니 이런 억지가 어디 있는가.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비상식적인 법률안 발의에 수도권 의원들이 뜻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20대 국회에서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을 지역구로 한 의원 비율은 전체의 48.2%나 된다. 여야 의원들 간 입장 차이는 있겠지만 만약 이들이 힘을 합치면 웬만한 법률안은 국회에서 통과시킬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선다는 뜻이다. 법률안이 채택되지 않더라도 정부의 예산 편성 때 수도권에 유리하도록 압력을 넣는 등 전횡을 저지를 가능성도 다분하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최근 비수도권 의원들의 대응 움직임은 적절한 견제수단이 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충청권 의원이 낸 '수도권정비계획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대표적이다. 이 개정안은 수도권 규제와 정비계획을 수립할 때 기존의 수도권정비위원회 심의와 더불어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심의도 거치도록 했다. 또 같은 당의 다른 의원도 지방대학의 무분별한 수도권 이전을 제한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주한미군 공여구역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유재중(부산 수영구) 의원이 곧 발의할 예정인 '국가재정법 및 국가회계법 개정안'은 더 의미가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정부는 매년 예산과 기금을 편성할 때 수도권과 비수도권에 미칠 영향을 미리 분석한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 예산집행 단계에서도 국가균형발전 실적과 평가가 포함돼야 한다. 유 의원은 국가균형발전 특위 구성 결의안도 발의할 계획이라고 하니 이에 대한 기대도 크다.
일부 수도권 의원의 이성을 상실한 행동에는 치밀한 논리를 앞세워 점잖게 대응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설득이 통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힘으로 맞서는 방법이 차선책이 될 수밖에 없다. 갈수록 노골화되는 수도권 규제 완화 움직임을 이 시점에서 끊지 못하면 대처가 힘들어진다. 유 의원 등이 발의한 법률은 수도권 의원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설 경우 국회 통과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비수도권 의원들의 단합이다. 이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에 갈등을 불러오고자 함이 아니다. 비수도권 주민들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수도권의 지나친 비대는 필연적으로 비수도권의 몰락을 가져온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균형발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대한민국 국민은 서울에 살든, 지방에 살든 어디에서나 좋은 환경에서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