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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곱게 늙어간다는 것은 /주선희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06-19 19:37:23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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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느 유명 대학병원에서 하는 세미나에 강사로 초청받아 가게 되었다. 필자의 순서는 세 번째였는데 첫 번째, 두 번째 강사가 내가 준비한 내용의 일부를 강의하는 게 아닌가?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그 부분은 빼고 얘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잠시 휴식시간에 뒤를 돌아보니 반가운 분들이 눈에 띄었다. 필자의 박사과정 지도교수 부부였다. 인사를 드리고는 "강의를 듣는 사람도 많지 않고, 앞에서 하신 분(강사)들과 겹치는 부분도 있고 해서 저는 짧게 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기 온 백여 명의 청중은 오늘 세미나를 위해 귀한 하루를 내신 분들이네. 숫자는 적지만 진짜들이야. 그러니 준비해온 걸 다 풀어놓으시게."

필자는 그 말씀에 '진짜'의 의미를 나름 떠올려 보았다. '그래, 진짜 학문적 욕구가 강한 사람들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차례가 되자 "제 지도교수님께서 오셨는데, 오늘 여기 참석하신 분들은 '진짜'라고 하시더군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행사 후, 다른 강사였던 의사들과 회식자리를 가졌다. 다섯 번째 강사였던 안과의사는 강의 중에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이 눈이다"고 했었다. 이 자리에서 다른 의사가 "정말 눈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때 필자가 끼어들었다. "저 선생님은 진짜 전문가이십니다. 자신의 일을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본인에게 가장 아름다운 것이 눈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때 뇌신경외과 의사가 거들었다. "저에겐 펄떡거리는 젊은이의 선홍빛 뇌혈관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이어 다른 의사가 친구 의사의 말을 전했다. "간 전문의인데, 장기이식을 위해 젊은이의 간을 추출하면 너무 아름다워서 한 번 만져보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 필자도 덩달아 나섰다. "저는 얼굴색이 밝고, 늘 웃어서 얼굴에 탄력이 넘치고, 표정이 건강한 사람을 보면 에너지를 얻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생일날 큰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쁩니다." '머리 나쁜 사람은 머리 좋은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머리 좋은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일을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 의사들은 모두 자기 일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명의'라는 타이틀은 일을 즐기는 사람에게 당연히 따라오는 훈장이다.

언젠가 친구가 유명 미용실에 다녀온 얘기를 들려주었다. 우리나라에서 '커트 일인자' 이름난 원로 미용인은 언제나 예약이 밀려있었다. 커트 스타일은 고객의 선택이나 요구가 아니라 그 미용인이 정하는 것에 따라야 할 정도로 강력한 카리스마로 고객을 '기죽이는' 곳이었다. 간신히 예약을 하고 그 미용인 앞에 떨리는 마음으로 앉았는데, 그가 "와줘서 너무 고맙다. 이 머리카락을 만지니 너무 기분이 좋다. 자주 와 달라"며 인사를 했단다. 평생 파마나 염색이라곤 일절 하지 않았던 친구의 머릿결이 그 미용인에게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가 왜 그토록 유명한 미용인이 되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에게는 건강한 머릿결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명의이든 미용명장이든 '명'자가 붙을 정도로 일가를 이룬 분들을 보면 깊은 주름 속에 담긴 연륜에서 풍겨나오는 '아우라'가 정말 아름답다. '아, 곱게 늙어간다는 것이 바로 저런 것이구나'라며 감탄하게 된다. 어디 직업으로 일하는 사람들 뿐일까? 평생 봉사에 헌신한 마더 테레사 수녀의 주름은 얼마나 숭고하며 자식들을 정성껏 잘 키워낸 어머니들의 주름 또한 얼마나 눈물겨운가.

나이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성형으로 주름을 당기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인간의 얼굴은 세월을 거듭하면서 처지고 주름지기 마련이다. 주름은 얼굴근육의 움직임 때문에 그 부분의 콜라겐이 파괴되면서 생기는 것이다. 주름에는 많이 웃어서 눈가에 생기는 주름이 있고, 반가워서 눈썹을 번쩍 올리다 보니 이마에 생기는 주름도 있다. 이렇게 긍정적인 이유로 생기는 주름은 밉지가 않다. 그래서인지 서양 사람들은 찡그린 인상 때문에 생긴 미간 주름은 없애려고 하지만 이마주름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주름을 인공적으로 없애지 않고도 '곱게 늙어가는' 모습은 인생 선배로서 젊은이들에게 보여주는 희망이요 위안이 될 수 있다. 삶은 구겨진 채로 살면서 얼굴만 팽팽하게 당긴 '동안'의 어색한 미소보다는 뇌 속 시뻘건 핏줄에서조차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살 줄 아는 '연륜'의 당당한 미소를 만날 때 젊은이들은 살아볼 만한 미래의 삶을 꿈꾸게 되지 않겠는가.

원광디지털대 얼굴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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