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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 칼럼] 홍순언과 기녀

기루에서 여성 구해준 인연으로 명 파견 이끈 역관 홍순언

성추행으로 나라 격 떨어트리고도 무죄 주장하는 이와 대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06-16 18:46:39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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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한 토막. 선조 때 홍순언(洪純彦)이란 역관(譯官)이 있었다. 그는 북경에 갔다가 기루(妓樓)에 놀러갔다. 기녀의 미모에 따라 치르는 돈이 달랐는데, 하룻밤에 천금(千金)이나 되는 돈을 요구하는 기녀가 있었다. 요즘 돈으로 몇 억이나 되었던 모양이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얼마나 미모가 출중하면 그렇게 큰돈을 달라할까 싶어 얼굴이나 보자는 생각에 기녀를 불렀다. 과연 열여섯의 천하에 둘도 없는 절색이었다.
홍순언 앞에 앉은 기녀는 흐느끼며 "천금을 내건 것은 그 돈을 손쉽게 낼 사람이 없을 것이므로 당분간 몸을 보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한편으로는 의로운 사내가 있어 천금을 내고 자신을 기루에서 빼내 준다면 그를 평생 섬기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들어보니 불쌍하다. 어떻게 처녀의 몸으로 기루에 오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아버지가 남경의 호부시랑인데 관가의 돈을 잘못 처리하여 죽게 되었으므로 그 돈을 갚기 위해 몸을 팔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홍순언은 깜짝 놀랐다. 이 젊은 아가씨는 아버지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기루에 자신의 몸을 판 것이었다. 이건 효녀 심청이가 아닌가. 삼강오륜을 지키기로 세상에 유명한 조선사람 홍순언은 호기롭게 심청이가 바라는 돈을 지불하고 나왔다. 여자가 이름을 묻자 조선역관 홍순언이라고만 답하고 쿨(?)하게 돌아섰다. 여자는 무수히 그를 '은부(恩父)'라고 부르면서 감사의 뜻을 표했다.

홍순언은 뒷날 다시 중국에 들어갔다. 북경 근처에 이르렀더니, 길가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홍역관'이 오느냐고 묻는다. 이상한 일이었다. 북경성 안에 들어가니 길 한쪽 편에 친 커다란 차일 아래 사람들이 잔뜩 몰려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나서며 "병부상서 석성(石星) 어른께서 홍 역관을 기다리는 중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윽고 석성이 나와서 홍순언을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홍순언이 석성의 집에 들어서자 아름다운 차림의 부인이 나와서 절을 올린다. "은부께서 이제 오셨습니까?" 석성이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따님이 장인어른을 기다린 지 오래입니다."

홍순언은 비로소 석성의 부인이 과거 기루에서 천금을 주고 구해냈던 여인인 줄 알게 되었다. 여인은 기루에서 풀려난 뒤 이내 석성의 계실(繼室)이 되었던 것이다. 홍순언이 귀국할 때 석성의 부인은 '보은(報恩)' 두 글자를 새긴 비단을 짜서 주고 그 밖의 금은보화를 수도 없이 실어 보냈다. 홍순언이 살았던 동네는 그가 석성의 부인에게서 받아온 비단으로 인해 '보은단골'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지금의 서울 중구 을지로1가 부근이다. 지명까지 생길 정도였으니, 조선시대 사람들은 홍순언과 석성의 계실 이야기를 사실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뒷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은 명(明)에 출병을 요청했다. 명이 파병을 결정하는 데는 석성의 힘이 컸다고 한다. 석성은 자기 아내를 구해 준 일로 조선사람을 의롭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홍순언 이야기는 수십 종의 문헌에 전하는 아주 유명한 이야기다. 물론 홍순언은 가공의 인물이 아니고 실재했던 인물이다. 홍순언은 명나라 사신의 영접에 7차례나 참여하고, 9차례나 명나라에 역관으로 파견되었던, 조선과 명나라 사이의 외교 제일선에 서 있었던 인물이다. 홍순언은 종계변무(宗系辨誣·'대명회전(大明會典)'에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권신(權臣)인 이인임(李仁任)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정정해 줄 것을 요청한 일)에 큰 공을 세워 광국공신(光國功臣) 2등 당릉군(唐陵君)에 봉해진다. 이어 그가 임진왜란 때 북경에 파견되어 명의 조선 파병에 큰 역할을 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홍순언이 기루에서 뒷날 석성의 부인이 된 여성을 구해 준 것은 사실이었던가. 그렇다고 말할 만한 확정적인 자료는 없다. 또 그런 자료가 남을 리 만무다. 하지만 석성이 조선에 원병을 보내는 사안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명사(明史)'나 '선조실록' 등 당시의 여러 문헌자료로 입증할 수 있다. 또 석성이 홍순언을 특별하게 대했던 것도 확인할 수 있다. 홍순언과 동시대 인물인 박동량(朴東亮, 1569~1635)의 '기재사초(寄齋史草)'를 보자. 이 자료에 의하면, 석성은 홍순언을 불러 자신이 조선의 일에 힘을 다 쏟고 있지만 반대가 심하니, 조선에서 청병(請兵)을 하는 사신을 보낸다면 원병을 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고, 자신도 힘을 더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로 보아 홍순언이 석성의 부인이 된 젊은 여성을 기루에서 구해주었다고 믿어도 크게 망발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느냐고? 박근혜 정부 초창기에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윤창중이란 사내가 생각나서다. 2013년 5월 청와대 대변인으로 대통령을 수행해 미국에 갔다가 한국계 미국인 인턴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돌연 귀국한 그 사내 말이다. 이 사내가 최근 공소시효가 만료되었으니 자신은 아무런 죄 지은 바 없는 사람이라면서 떠들고 나선 것은 모두가 아는 바이니, 굳이 되풀이 하고 싶지 않다. 다만 공소시효가 끝나는 날짜를 꼽고 있다가 더는 문제가 되지 않을 때가 되자 '그동안 미국에서 문제 삼지 않았으니 나는 무죄다'라고 말하는 그 교활함과 뻔뻔함이 너무나도 놀랍다. 어떻게 저 정도의 인물이 일국의 대통령 대변인이 될 수 있었을까? 또 그 사람이 2013년 이전 쓴 글을 보면, 그 인물됨을 알 만한데도 굳이 그를 등용한 것은 무슨 심사란 말인가.

모든 외교가 예외 없이 자국의 이익을 위한 이기적 속성을 갖는다 해도, 그 바닥에는 윤리와 정의가 깔려 있어야 마땅할 것이다. 조선시대의 역관 홍순언은 한 여성을 기루에서 구해주었다. 그의 윤리적 행위는 결과적으로 나라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오늘날 한 사내는 성추행으로 인해 나라의 격을 크게 떨어트리고는 반성은커녕 공소시효가 끝났다며 '나는 무죄'라고 나선다. 세상이 이렇게도 달라진 것인가. 아니면 이 나라의 주인 노릇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속성이 원래 그런 것인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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