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침체와 관련된 산업체의 구조조정으로 실직된 근로자들의 아픔,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 희생자의 안타까움,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의 묻지마 살인사건 등 매스컴을 뒤덮는 여러 황당하고 안타까운 뉴스가 많이 있었다. 이유는 서로 다를 수 있지만, 무한경쟁을 추구하는 사회가 낳은 부조리한 현상으로 인한 결과는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번 해 본다.
보통 현대 사회인은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지금의 나라 살림살이가 풍족해지기 위해서는 경제가 발전해야 하고 발전된 경제를 통하여 충분한 세수가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또 이익창출을 위한 서로 간의 무한한 경쟁은 당연시되고 뒤떨어진 경쟁자는 경제가 나아가는 데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이다. 오래도록 철밥통으로 여겨진 대학교 교수들도 요즘 직급승진을 위해서는 각 학교에서 정해진 승진별 퍼센트 내에 들어가야 하기도 하는데 말이다.
경쟁상황 이면에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런 경쟁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세상이다. 내 자신이 열심히 해서 얻어지는 것보다 다른 경쟁하는 누군가보다는 잘해야 더 많은 것이 얻어진다는 것. 이런 현실이 내 것을 감추고 다른 것을 곁눈질하게 하는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당신이 잘되어야 나도 잘되는 사회가 아니라 당신보다 내가 잘되어야 하는 사회가 당연시 되고 있는 것 같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경쟁을 한다는 것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원동력이다. 그렇지만 경쟁이 무한정일 수는 없지 않은가. 한의학에서는 무한이 얻고자 하는 욕심인 양(陽)의 활동이 지나치면 뒷받침을 해주는 근본인 음(陰)이 부족해지는 원리가 작동된다고 한다. 이럴 때 인체는 과열이 되기 시작하여 문제가 발생되는 단계, 즉 인체에서 화(火)가 시작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화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화가 쌓이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부터 본인의 감정조절이 통제되지 않아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더 많은 것을 얻고자 주위를 소홀히 하고 이익을 독차지하려는 마음, 즉 욕심을 조금 줄여야 한다. 누군가 말한 소욕지족(少慾知足·탐욕을 적게 하고 만족한 줄 아는 것)하는 마음과 안분지족(安分知足·편한 마음으로 자기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아는 것)하는 삶의 사회는 과연 못 살고 실패한 사회일까?
얼마 전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달리기를 하다 발에 걸려 넘어진 친구를 위하여 앞서 가던 나머지 친구들이 뜀박질을 멈추고 다함께 결승선을 걸어서 들어온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연한 일이라고 그 어린 친구들이 인터뷰하는 장면은 나를 포함한 여러 어른이 반성을 많이 하게 하는 영상이었다. 정신적인 문제가 쌓여서 어떤 나쁜 행동이 나오기 전에 약을 복용하고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정신적인 문제가 적게 발생하는 사회가 되도록 어른들이 이끌어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대학 수능시험에서 몇 퍼센트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가르침,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온 교육이 슬픔과 고통의 경쟁을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합당하지 않는 경쟁을 서로 상생하는 경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또한 교육이라고 생각된다. 그 운동회에서 같이 뛰었던 학생들이 쓰러진 친구의 아픔을 서로가 조금씩 분담해 기쁨을 배가한 상생의 경쟁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서 우리 모두 화가 적고 만족감이 많은 사회를 만드는 어른들의 가르침이 필요한 때이다.
공자는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한다면 타인으로부터 원망을 사는 일이 많아진다"고 말했다. 나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더불어 같이 가면 얻어갈 수 있는 이익이 많고 오래감을 알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나를 포함한 여러 어른과 나라가 적극 나서서 이끌어 나갔으면 한다.
동의대 한의과대학 부속한방병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