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내 생리대 업체의 가격 인상 소식이 알려지고 이를 계기로 생리대를 마음 놓고 살 여력이 없는 청소년들이 수건이나 신발 깔창, 휴지로 대신하고 있다는 사연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생리대 가격이 부담스러운 저소득층 여학생 수가 약 10만 명이라는 통계도 접했다. 급기야 어느 기초자치단체는 저소득층 청소년 생리대 지원사업을 검토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필자는 이 과정에서 정책 형성 과정의 참여를 다시금 생각해 봤다. 국내 기초자치단체 차원에서 일부 어려운 계층에 생리대를 지원하는 사업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하나의 예로 한부모가정 중 부자 가정의 자녀일수록 위생용품 구매나 사용방법 등에 대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매월 일정량의 위생용품을 지급해온 지방자치단체의 사업이 있다. 부산지역 구·군 중에도 이 사업을 시행하는 곳이 있는 것으로 안다. 이런 사업의 아이디어는 그 아이들이 낸 것일까? 아니면 그들을 돌봐주는 주변 사람들이 냈을까? 물론 아이디어의 출처보다도 지원으로 인한 인권과 인간존엄의 가치 증진이 더 우선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정책의 많은 경우가 어른들의 시각에서 기획된다. 그 어른들 또한 아동기를 거쳤기에 아동의 관점이 아니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아동이 직접 정책결정과정이나 실행과정에서 의견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아동이 직접 참여하는 정책의 관점에서 요즘 가끔 듣게 되는 아동친화도시의 목표와 원칙들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 추진되는 아동친화도시는 대부분 유니세프의 목표와 원칙들을 따르고 있다. 유니세프는 아동친화도시를 18세 미만의 모든 아동이 살기 좋은 도시로 유엔아동권리협약의 기본정신을 실천하는 지역사회로 정의한다.아동친화도시란 생존권, 발달권, 보호권, 참여권 등 아동의 4대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고 구현되는 도시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 성북구와 전북 완주군이 유니세프로부터 아동친화도시로 인증받았으며 현재 다수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아동친화도시를 주요 과제로 추진 중이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전국의 32개 시·군·구가 아동친화도시 추진 지방정부협의회에 가입하여 아동친화도시 조성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있다고 한다. 동남권 지역에서는 부산 금정구가 유일하게 포함되어 있다.
아동친화도시의 목표는 많지만 그 중에서 참여권에 중점을 두고 몇 가지만 소개하면 이렇다. 아동은 지역사회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아동은 가정과 지역사회의 일에 앞장서는 멋진 활동가이다. 착취와 폭력, 학대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는다. 거리를 다닐 때 안전하다고 느낀다. 자유롭게 친구들을 만나서 즐겁게 논다. 문화행사나 사회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등이다. 목표의 나열 순서가 무게감이 다른 것은 아니지만, 참여권이 앞쪽에 있어 상대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아동친화도시가 되기 위한 원칙도 다양하다. 아동과 관련된 일을 시행할 때 아동의 의견을 듣고 고려해야 하는 아동의 참여권 보장, 모든 아동의 권리를 증진하고 보호하는 조례와 규정이 있어야 하는 아동친화적인 법체계 운영을 따져봐야 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원칙에 따라 아동권리 전략 개발, 아동의 의견을 먼저 고려하는 아동권리 전담기구 설치, 정책과 조례 등이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아동영향평가 시행도 중요하다. 아동을 위해 적절히 예산을 확보하고 아동 관련 예산이 잘 쓰이는지 분석하는 아동 관련 예산 확보, 아동의 권리실태를 지속해서 수집하는 정기적인 아동실태보고도 빼놓을 수 없다. 원칙에서도 아동의 참여권에 대한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아동친화도시 원칙을 강조하는 지역에서 생리대 가격을 감당하지 못하는 저소득층 여학생을 외면할 리는 없다고 본다. 어른의 시각이 아니라 아동 자신의 정책 참여를 통해 해결책을 제시하라고 해도 금방 답이 나올 것 같다. 어른인 필자의 시각과는 다른 아동이 주변 친구들을 배려하는 따뜻한 정책이 나올 것이다.
금정구의 아동친화도시 홍보물은 어린이·청소년의회 운영, 청소년 정책 창안대회, 청소년총회, 아동실태조사 등을 통해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과 아동의 권리실태를 정기적으로 평가하여 아동의 권리가 보호되는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겠다고 소개하고 있다. 제시된 정책과제 대부분이 생소하지만, 아동의 정책과정 참여를 강조하는 것은 쉽게 이해된다. 어른들이 기획하는 도시가 아니라 아동들의 참여를 통해 만드는 아동친화도시의 확대를 기대해 본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