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8일 중국 베이징에서는 제5차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 회의(CICA) 외교장관회의가 개최되었으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개막연설을 하였다. 이 회의에는 한국이 2006년 가입한 이후 외교장관으로서는 최초로 윤병세 장관이 참석하였으며, 우리의 최대 관심사안인 북한 핵과 탄도미사일 도발에 대한 규탄이 포함된 선언문이 채택돼 우리 언론에도 보도되었다.
원래 이 CICA 회의는 아시아 지역 내 평화와 안보를 위한 상호 신뢰 구축 및 분쟁예방을 목적으로 1992년에 출범한 안보포럼이다. 중국과 몽골, 러시아, 한국 외 일부 아세안 국가 그리고 중앙아시아와 중동의 국가들로 이루어진 26개 회원국과 미국 일본 인도네시아 등이 옵서버로 참가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그다지 관심을 끌지는 못하였다.
사실 CICA가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이 회의가 북핵 문제 같은 지역의 안보현안을 비중 있게 다루어서가 아니라 2014년 5월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된 CICA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공동의 포괄적이고 협력적이며 지속 가능한 아시아 안보'라는 새로운 아시아안보 개념을 제시하면서 '아시아인에 의한 아시아 안보'를 언급한 이후이다. 뒤이어 같은 해 6월 베이징에서 개최된 대규모 국제포럼에서 중국 정부의 고위 인사들은 이러한 시 주석의 '신아시아 안보개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한편 미국의 동맹체제를 비판하면서, 이를 통해 미국을 아시아에서 배제하려는 것임을 감추지 않았다. 이는 당시 미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있는 반면 중국의 자신감이 크게 고양되었으며, 이에 따라 미국의 한 전직 고위관리가 지적한 대로 중국이 도광양회(韜光養晦,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는 뜻으로 1980년대 중국의 대외정책을 일컫는 용어)를 벗어나 미국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기 의견을 내세우는 대외정책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2015년에 이르러서는 중국의 학자들에서 신아시아 안보개념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필자의 질문에 대해 중국 측 인사들은 대체로 미국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아시아 안보에서 우월적인 위치에 있다는 현실을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안보관은 중국이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목표로 보는 것이 옳다는 설명을 하곤 하였다.
실제로 지난해 9월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되었던 미중 정상회담을 보면, 중국이 미국과의 국력 차이를 인정하고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을 장기적인 각도에서 추진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예를 들어 정상회담 후 개최된 백악관 공동기자회견에서 시진핑 주석은 미국이 아직 지구상의 어떤 나라와도 비교될 수 없는 힘과 유리한 여건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미중이 서로 배척하지 말고 함께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협력을 증진하자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이는 미국의 경제가 호전되고 있고, 일본의 집단자위권 법제 통과로 미일 동맹이 강화되었다는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였다.
시진핑 주석의 CICA 회의 개막연설과 관련해 한국의 언론들은 당시 북핵 문제에 대한 시 주석의 언급을 중심으로 보도하였지만, 사실 시 주석 연설의 핵심은 CICA 회원국들이 자신의 신아시아 안보개념에 따라 '콘센서스'를 형성하고 대화와 협력을 확대하여 아시아 특색의 안보관리 모델을 구축해 나가자고 언급한 부분에 있다고 하겠다.
아울러 시 주석 연설의 전체적인 흐름은 지난해 미중 정상회담 때 미국과의 대화와 협력을 언급하던 것과 맥을 같이하면서 역외 국가들과의 협력과 포용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역외 국가들의 긍정적인 기여와 함께 아시아와 역외 국가들과의 협업을 환영한다고 언급한 반면에, 아시아인에 의한 아시아 안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물론 여기서 역외 국가는 미국을 지칭하는 것이다.
현재 남중국해에서 영토나 해양관할권 문제로 미국과 중국 간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그렇지만 위와 같은 중국의 움직임을 보면, 결국 중국은 군사력이나 과학기술, 소프트파워 등 여러 가지 면에서 향후 상당 기간 미국과 대등해지기는 어렵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중국으로서는 아시아에서 미국을 배제하겠다는 것은 장기적인 목표로 두고, 미국과의 본격적인 충돌은 피하면서 당분간 미국과의 협력에 더 비중을 두는 정책을 취하게 될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북핵 문제에 대한 미중 간의 협력이 보다 심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동서대 석좌교수·중국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