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저널리즘의 위기가 회자된 지 오래지만 작금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최근 국제언론감시단체 '국경없는 기자회'(Reporters Without Borders)가 발표한 '2016 세계 언론자유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세계 180개 국가 중 70위를 기록했다. 2013년 50위를 기록한 이후 4년 연속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고, 2000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 최악의 지표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 취재 및 보도의 투명성, 뉴스생산 구조 등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결과다.
이러한 국제적 지표와 더불어, 국내적으로는 올해 4·13총선 보도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정확한 민의를 수렴해 이슈를 발굴하고 공정한 여론을 형성해야 하는 저널리즘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고 보기 어렵다. 예컨대, 공직선거법에 규정된 여론조사 보도의 제한시점까지 진행된 1400여 건의 여론조사 보도는 최종 투표결과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변화된 미디어 환경을 반영하지 못한 선거법의 낡은 행정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정책 점검과 발굴을 위한 기획기사보다는 여론조사를 이용해 후보들 간의 지지도 추이를 보여주는 이른바 경마식 보도(Horse-Race Reporting)에 치중한 언론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저널리즘의 사전적 의미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시사성과 공공성을 갖는 내용을 전달하거나 토의하는 행위 또는 이와 같은 행위를 하는 매체'이다. 이러한 저널리즘의 행위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언론매체의 자율성 독립성 전문성은 핵심적인 내적 요인이며 정치·경제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양질의 뉴스 콘텐츠를 생산해 독자들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은 주요한 외적 요인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한국언론은 내외적으로 혁신의 요구를 부여받고 있다. 디지털 기술과 모바일 혁명이 구현하고 있는 변화된 커뮤니케이션 환경에서 뉴스 이용자들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정보를 접하고 있으며, 정보 생산자이자 유통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동안 전통적인 언론이 누려왔던 정보제공의 독점적 지위는 붕괴되고 있으며, 사회 현안에 대한 의제 설정 기능 역시 과거에 비해 저하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디지털 혁명에 대처하는 한국언론의 전략은 겉돌고 있는 실정이고 무료 뉴스 시대에서 새로운 경제적 수익모델을 창출하는 것도 현재로서는 불투명해 보인다.
저널리즘의 영역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봉인 미국 뉴욕타임스는 전 세계적으로 혁신전략을 주도하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추진하는 저널리즘 혁신의 주요 공식은 좋은 뉴스 콘텐츠와 디지털 기술의 유기적 결합이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뉴스 생산과 유통에 혁신을 이끌어 내어 공중이 신뢰할 수 있는 양질의 정보를 생산해야 한다는 말이다. 언론의 역사를 보면, 새로운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함께 언론은 언제나 새로운 취재방식과 기사양식을 개발해 온 점을 감안할 때 혁신의 내용과 방향은 맞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언론의 현실은 좋은 콘텐츠는 외면하고 포털의 과점화로 대변되는 비정상적인 온라인 뉴스 생태계에서 유통의 확산만을 꾀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언론의 사회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는 총체적 비판에 자유로울 수 없다. 심지어 최근 사회적 관심이 급증하고 있는 인공지능 로봇이 뉴스의 생산을 대체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로봇이 사실전달의 보도기능은 수행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해석과 관점이 요구되는 저널리즘의 논평 기능까지 담당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미국 뉴욕대 저널리즘 교수인 미첼 스티븐스(Mitchell Stephens)는 디지털 저널리즘의 혁신 방향으로 해석과 관점을 내세우는 새로운 '지혜의 저널리즘' (Wisdom Journalism)을 주장한다. 객관주의에 치중하는 미국식 저널리즘은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고 지적한다. 단순 보도 중심, 퍼나르기식 보도의 객관주의 저널리즘을 지양하고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회현상에 대해 보다 전문적인 시각과 통찰을 통해 부가가치가 높은 뉴스를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뉴스 과잉시대에서 디지털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국언론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뉴스 생산과 유통을 담당하는 저널리즘 본연의 기능은 미래에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저널리즘은 나날이 발전하는 정보통신기술과의 유기적 접목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진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동아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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