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개학해서 아침마다 차에 태워 학교에 데려다준다. 가다 보면 빨간색과 파란색 옷을 입은 사람이 자주 보인다. 자기 앞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열심히 절을 한다. 다름 아닌 정치의 계절이다. 가끔 아는 사람에게서 누구를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는다. 대답은 "예"라고 하지만 마땅히 도와줄 것도 없다. 스마트폰 문자메시지와 SNS에는 예비후보자 소식이 넘친다. 천편일률 자기를 알리는 활동을 적거나 사진을 올린다. 내가 왜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는지 '팥소'를 밝힌 후보자를 보기 힘들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갑 중의 갑'이다. 국회의원은 장관급 대우를 받는다. 국회의원 한 명의 연간 세비는 1억3800만 원, 보좌관 총연봉은 4억 원에 육박한다. 1인당 국민소득과 비교하면 세계 3위 수준이다. 4급 보좌관과 5급 비서관 두 명씩, 6·7·9급 비서 한 명씩, 유급 인턴 2명 등 총 9명의 유급 보좌관을 둘 수 있다. 어디 이뿐인가. 의원회관 운영비와 차량 유지비 등으로 연간 9000만 원을 국고에서 지원받는다. 현행범을 제외하고 체포되지 않는 특권도 누린다. 외국에 출장을 나가면 재외공관의 영접을 받는다. 상임위원장이 되면 매월 500만~600만 원의 활동비를 받는다.

외국 국회의원은 힘들어 못 하겠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 국회의원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국내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보좌관이 없다. 국회의원이 자료를 찾고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 연봉이나 수당은 일반 직장인보다 못하다. 의원 연봉은 68만4000크로나(9712만 원)로 사기업 중견간부 수준(78만 크로나)보다 낮다. 하지만 업무량은 보통 직장인의 배가 넘는다. 오전 9시 출근해 밤 9시 퇴근한다. 법안을 발의하거나 대정부 질의를 할 때는 자정을 넘어 퇴근하는 것이 다반사다. 스웨덴 의원은 입법활동을 많이 한다. 스웨덴 국회가 의원입법 실태를 조사했더니 1인당 4년 임기 내 의원입법 수가 평균 87개에 이른다. 200개 이상의 입법안을 발의한 의원 수도 43명에 달한다. 가장 많이 발의한 의원은 437개를 발의했다. 살인적인 업무 강도다. 사생활은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재선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임기가 끝나면 의원 이직률이 평균 30%대다.

스웨덴에서는 가장 고된 직업이 정치인이다. 그래서 정치인은 자기 분수를 안다. 1995년 잉바르 칼손 총리가 하야를 천명하고 집권 사민당이 총리 후보 5명을 추렸다. 리스트 상위에 오른 4명이 총리직을 거부했다. 우리처럼 부정이 드러날까 봐 그런 것이 아니다. 이들은 모두 장관과 부총리 출신이다. 나름대로 검증을 받은 인물이다. 이들이 총리직을 거부한 이유는 뜻밖이다. "아이 교육과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 "총리가 될 자질이 없다" "역량이 부족하다" "사회 소외계급 삶의 질 향상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했다" 등이다.

우리 국회의원은 이런 철학과 목표가 없으니 후보가 되는 과정에서도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한다.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율을 받으려고 온갖 편법을 동원한다. 지인에게 부탁해 나이를 속이거나 심지어 주소까지 옮긴다. 어떤 구청장은 자기와 친한 후보만 공개적인 자리에서 소개한다. 음식을 제공하는 구태도 아직 버리지 못했다. 국내 정치사에서 한 획을 그은 인물을 보면 하나같이 신념의 정치인이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러했다. 민주 쟁취와 부정부패 타도, 지역분권을 외친 거산(巨山)이다. 당선을 향해 뛰고 있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왜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나."

사회1부 차장 nam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