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60년 만에 세계 11위 경제대국으로 성장시킨 것은 교육의 힘이다. 우리 국민의 높은 교육열은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진학률에서 알 수 있다. 특히 한국의 고등교육(대학교육)은 사학(私學)의 발전과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종교단체나 독지가들이 설립한 사학이 80%에 이른다. 한국 경제와 국가 발전에 사립대학들이 기여한 공로는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요즘 대학은 위기에 처했다. 대학을 보는 세상의 눈길은 싸늘하기까지 하다. 외형에 비해 질적 성장 부족으로 국제경쟁력이 그리 높지 않은 까닭이다. 이 점은 우리 대학인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세계 최저 출산율로 인한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다. 주요 원인의 하나로 교육비(사교육비) 부담이 꼽힌다. 높은 교육열이 저출산을 초래한 셈이니 아이러니하다. 또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2008년 84%에서 지금은 75%대로 떨어진 상태다. 이는 대학교육이 산업현장의 '니즈'(요구)를 충족해 주지 못한 영향이 크다.
지난해 국내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고점을 찍었고, 일부 부실 사학의 비리 소식은 공분을 자아냈다. 학생 모집부터 교육, 취업에 이르기까지 불철주야 노력해 온 대다수 대학인으로서는 자괴감이 든다. 이런 데다 정부는 구조개혁이라는 서슬 퍼런 칼날을 꺼내들었다. 대학을 평가해 최상위권 대학을 제외한 나머지는 강제로 정원을 감축시키는 것이다. 평가기준이 충원율과 취업률 위주여서 지방대학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면 지방대학들은 고사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지방대학 총장이나 교수들이 밤잠을 설치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이준식 신임 교육부 장관은 대학평가를 획일적인 정량 지표에서 탈피해 각자 설립 특성에 맞는 정성 평가 위주로 하겠다고 밝혔다. 그 취지가 잘 실행되기를 기대한다. 사실 그간 정부의 평가방식에 대해 불만을 가진 대학이 많았다. 국립대와 사립대, 수도권과 지방대학, 종합대학과 전문대학, 예술 등 특수목적 대학, 여자대학 등 다양한 형태를 아우르는 평가기준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대학 현장의 목소리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뒤 평가기준을 마련하고 실행에 옮겼다면 여러 가지 부작용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금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학, 특히 지방사립대학들은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까?
우선 그 대학의 설립 목적에 맞춰 특성화를 대폭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본다. 더욱이 지방대학은 해당 지역의 산업구조와 상통하는 교육과정을 갖추는 것이 핵심적 요소다. 이를 위해 지역 산업구조를 체계적, 심층적으로 연구 분석해 지역 산업체가 필요로 하는 인력을 양성 공급하고, 지역 산업체가 요구하는 수준의 기능과 지식들로 교육과정을 개편해야 한다. 이 과정이 국가가 요청하는 직무능력표준(NCS)에 기반을 둬야함은 기본이다. 또 전문대학은 직업교육에 설립 목적이 있으므로 이론보다 실습 위주에 초점을 맞추는 게 필요하다.
그 다음은 학령인구만의 교육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을 예로 들면, 교육부 지정 '평생 직업교육대학'으로서 고교 졸업생들뿐 아니라 재직자들의 직무능력 향상 교육, 퇴직자들을 위한 재취업 또는 창업 직무교육, 경력단절 여성들을 위한 교육 등을 시행하고 있다. 대학이 갖고 있는 인적 물적 인프라의 활용과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으로, 이 같은 프로그램에 힘을 쏟고 있다. 이는 본교를 포함한 전국 10개 '평생 직업교육대학'과 더불어 올해부터 4년제 대학이 실시하는 '평생 단과대학'에서도 그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세 번째로는 우리 대학들의 우수한 실습시설과 강사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개발도상국들의 유학생을 적극 유치하는 것이다. K팝과 드라마 등 '한류'의 영향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앞선 IT·기계 기술과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을 가진 해외 유학지원자들이 많다. 국내의 부족한 산업인력을 보충하기 위해서라도 국가적 차원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의 입국, 체류조건을 완화하고 지원하는 정책이 시행되어야 한다.
대학 입장에서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불가항력적이다. 그 대신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도 이미 존재하고 있는 대학들을 인위적으로 문을 닫게 할 수는 없다. 대학의 우수한 인력이나 기자재, 시설 등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한국의 대학들을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동원과학기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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