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뭔가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까 하는 희망을 가졌지만, 북한의 4차 핵 실험으로 남북 관계는 또다시 어려운 상황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번 핵 실험을 보면서 북한은 역시 예측하기 힘든 집단이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사실 북한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남쪽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권력의 3대 세습과 같은 정치적인 것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나 일상적인 삶의 방식에서도 북한은 확실히 남한과는 다른 사회가 된 것 같다.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70년 동안의 완전한 단절이 남과 북을 이질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통일은 '원래 상태로의 복귀'가 아니라 이질적인 두 사회의 결합이 되었다. 따라서 이렇게 서로 다른 남과 북이 통일이 되면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안이 되었다. 2년 전인 2014년 신년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 대박'을 언급했다. 그러나 남과 북의 현실적인 이질성을 고려하면, 통일이 대박이 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남한에서 충분한 준비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통일 이후 북한 사회를 변화시키고 북한 주민들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에 적응시키기 위한 많은 노력이 행해져야 하겠지만, 70년간 상호 독립적으로 살아온 남과 북을 철저히 동질적인 사회로 만들겠다는 것은 그다지 현실적인 생각 같아 보이지 않는다. 생활 풍습이나 관행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무리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긴 시간에 걸쳐 형성된 관습이 통제나 교육에 의해서 하루아침에 바뀔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일이 되더라도 각 지역의 고유한 삶의 방식과 특성은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지역의 특수성과 고유함이 무시된다면 북한 주민에게 통일은 '북한 지역의 남한화'에 다름 아닐 것이고, 이런 경우 상당한 반발과 심적 거부감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통일 한국의 기본적 가치와 틀의 설정은 중앙에서 해야 할 일이겠지만, 일상적인 삶의 문제는 지역 차원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분권적인 접근이 보다 바람직해 보인다. 최근 통일 이후의 정치체제에 대한 논의에서 연방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사실 이는 통일 이후 북한 주민의 재사회화를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다. 이제껏 북한 주민은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와 '자치'를 경험해 본 바가 없다. 북한 주민은 과거에는 조선 왕조의 백성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 신민이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봉건적 왕조와 다를 바 없는 전체주의 체제하에서 살아 왔다. 즉 자유민주주의는 북한 주민에게는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선' 제도인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를 배우고 그 특성과 가치를 체득하도록 하는 기회를 부여하는 일은 통합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는 외부에서 강요하는 학습이나 통제를 통해서는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 참여하여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경험해 가는 것이 중요한 데, 이는 아무래도 중앙 정치보다는 지역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즉, 지역 분권과 주민의 자치를 통해 북한 주민이 새로운 체제의 원칙과 특성을 이해하면서 이에 대한 애정과 충성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독일에서도 동독 주민의 정체성 혼란이나 자긍심 실추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도록 하는데 지방분권 체제가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분권적 통치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해도 통일 이후 갑작스럽게 분권 체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현실적인 방안으로 볼 수 없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제도를 통일 이후 '실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즉 통일을 대비한 분권형 체제는 바로 '오늘 여기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지방자치가 본격화된 지 이미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통치와 행정의 중심은 서울이고, 과도한 법적·재정적 권한과 기능이 중앙정부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대통령을 견제하기 위해 국회, 사법부의 권한을 강화한 '수평적 차원'의 권력 분산은 어느 정도 이뤄져 왔지만, 중앙과 지방 간 '수직적 차원'에서의 민주화는 사실 별로 이뤄진 것이 없다. 통일 준비는 거창한 조직과 요란스러운 이벤트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통일 이후의 삶을 고민하면서 오늘 우리의 문제를 하나씩 고쳐나가는 것이 바로 통일을 준비하는 길이다. 지방분권이야말로 통일을 위해 더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국가 과제이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