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실아 어디 있느냐. 말을 좀 해 보거라."
세종의 물음은 산산이 흩어지고 밤하늘엔 별만 반짝거린다. 영실은 별이 되었다. 저 별이 이제 영실의 주군이다.
이윤택은 자신이 쓰고 연출한 창작 뮤지컬 '궁리-세종과 장영실'에서 장영실의 최후 실종을 이렇게 처리한다. 한갓 미천한 노비에서 조선 최고의 과학자로 떠올랐다가 역사에서 실종해버린 장영실의 드라마틱한 삶을 별로 승화시킨 것이다. 이윤택다운 산뜻한 상상력이다.
그 장영실이 별로 뜨고 있다. 많은 국민이 별의 향방을 쫓느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병신년 벽두 KBS는 야심차게 준비해온 대하드라마 '장영실'을 띄웠다. 사극 킹으로 통하는 송일국이 주연을 맡았는데, 예상대로 초반 시청률이 11%를 넘어서는 등 인기몰이가 대단하다.
'장영실'은 대하드라마 최초의 과학 사극으로, 총 24부작으로 제작된다. 앞으로 약 3개월간 안방 나들이를 하며 화제를 만들 것이다. '장영실' 제작진은 "궁중의 사건, 과학기구, 과학적 발견 등을 쉽게 풀어 아이들을 포함한 폭넓은 연령대가 즐길 수 있도록 했다"고 밝히고 있다.
'왜 장영실인가'란 질문은 이윤택이 '궁리'에서 이미 답해줬다. 이윤택은 특유의 문학적 연금술로 변방인의 설움, 홀대받는 민중, 아웃사이더의 비애 같은 가려진 가치들을 끌어내 '인간 장영실'을 감동적으로 되살려냈다.
KBS의 장영실 선택은 이러한 가치에 의미를 부여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앞서 KBS는 '궁금한 일요일-장영실 쇼'라는 과학정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장영실을 타이틀롤로 잡아 짭짤한 재미를 본 터다.
주목할 것은 장영실의 화려한 귀환이다. 이윤택이 역사 속에 잠자는 장영실을 깨웠다면, KBS는 대하드라마라는 옷을 입혀 장영실에게 말을 시키고 있다. 장영실 자체가 '핫(hot) 콘텐츠'이자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부상했다는 뜻이다.
장영실이 부산 동래 출신의 관노(官奴)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 동래읍성 북문 앞에 조성된 장영실 과학동산은 고향사람들의 헌사다. 동래읍성 인근에 관노들이 모여 살던 관노산(官奴山)이 있었다고 하니, 장영실의 집도 그 어드메쯤으로 볼 수 있겠다.
장영실이 뜬 마당이니 시쳇말로 장영실을 들이대면 안될 게 없을 분위기다. 그런데도 부산(동래)은 무덤덤하다. 이런 속수무책이라니! 몰라서 그렇다면 세상 흐름에 무지한 거고, 알고도 가만 있다면 무심한 것이다. 그동안 부산시와 동래구가 벌여온 '장영실 사업'들이 차라리 머쓱하다. 일성정시의, 천상열차분야지도, 현주일구, 앙부일구, 선기옥형, 자격루 같은 장영실이 만든 과학 발명품들을 잔뜩 전시해놓고 호흡을 불어넣는 일엔 관심이 없다는 것 아닌가.
이게 인물을 읽고 문화를 요리하는 부산의 현주소라면 정말 걱정스럽다. 하긴 2009년 '장영실과학고'가 '부산과학고'로 개명될 때 장영실은 부산 시민들로부터 1차 버림받은 처지였다. 이윤택의 창작 뮤지컬 '궁리'가 지난해 연말 개관한 기장 안데르센극장에서 몇 차례 공연하다 기장군과 의회의 마찰로 제동이 걸린 것도 아쉬움이다. 장영실은 이렇듯 지역에서 알게 모르게 찬밥 신세다.
없는 스토리도 만들어내고 꼬투리만 잡혀도 스토리를 키워 보석으로 빚어내는 시대다. 그런데 부산은 굴러들어온 보석을 끌어안지도, 키우지도 못하고 있다. 원님 덕에 나팔 불자는 말이 아니다. KBS덕에 장영실을 팔아먹을 수도 있겠지만, 기회가 왔을 때 지역의 '상징 브랜드'를 만들어내자는 얘기다.
거창하거나 요란할 필요도 없다. 큰돈 들어갈 일도 아니다. 손쉽게 '장영실을 찾아서'란 주제로 과학 투어 프로그램을 돌려보자. 동래읍성의 장영실 동산과 복천박물관, 국립부산과학관을 연계한 투어 프로그램이 이어지면 아이들이 좋아할 것이다. TV드라마 방영에 맞춰 장영실의 획기적인 발명품을 재조명하는 과학 체험 프로그램도 가능하다. 장영실의 집(관노산)을 찾는 학술연구를 시작하고, 문화예술계에서 제2, 제3의 '궁리'를 만들어낸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양맹준 전 부산박물관 관장은 장영실을 '호모 파베르(Homo Faber·공작하는 인간)'라 부르면서, 장영실 콘텐츠의 확장성에 주목했다. 신분의 벽을 넘어 과학입국의 틀을 닦은 풍운아, 지방민의 입지전적 성공, 대한민국이 가장 존경하는 과학자…. 이런 사실만으로도 장영실은 충분히 '스타'라는 것이다.
우주를 유영하고 있는 소행성 68719호에는 '장영실(Jangyeongsil)'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장영실이 명실공히 별이 되었음이다. 그 별이 귀향하고 있는데도 고향에선 눈만 껌뻑이고 있으니… .
장영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부산은 '아프게' 대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