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유리컵에 든 물 위에 검은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려 보자. 잉크 덩어리는 점차 잘게 부서진다. 한참 지나면 잉크 알갱이가 골고루 퍼져 물은 회색을 띠게 될 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잉크 알갱이는 다시 뭉쳐지지 않는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접시가 깨지면 조각들이 흩어질 뿐 다시 모여 접시가 되는 일은 없다. 그 유명한 '엔트로피(entropy) 법칙'이다.
엔트로피는 '자유도(degree of freedom)' 혹은 '무질서도'로 번역된다. 잉크 방울이 물속에서 흩어지는 현상은 잉크 알갱이의 자유도 혹은 무질서도가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엔트로피 법칙은 '우주의 엔트로피는 증가한다'로 표현된다. 우리 우주의 자발적인 현상은 항상 무질서해지는 쪽으로 일어난다는 뜻이다. 엔트로피 법칙은 비가역성(irreversibility)을 규정한 우주의 절대법칙이다. 비가역성이란 되돌릴 수 없다는 뜻. 불가역성도 같은 뜻인데 비가역성으로 많이 쓰인다. 시간이 미래로만 흐르듯이 우주도 무질서의 극단인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법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엔트로피 법칙은 사회와 정치 현상에도 적용된다. 이 법칙에 따르면 역사는 구성원 개개인의 자유도가 높아지는 쪽으로 전개된다. 그러니 개인의 자유를 옥죄는 독재자는 반역사적인 셈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저서 '엔트로피'를 통해 고엔트로피 사회로 치닫는 현대문명에 경종을 울렸다. 물질문명의 비가역성을 감안할 때 고생산 고소비 사회는 결국 종말을 재촉하는 행위라는 지적이다. 한 번 그르치면 원래 상태에서 새로 시작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들어 도시개발은 비가역적 특성이 있다고 흔히 말한다.
불가역적이라는 단어가 외교에도 등장했다. 위안부 문제 협상을 다룬 한일 외교장관 기자회견 발표문에 '불가역적 해결'이란 문구가 있다. 미해결에서 해결로 갔다면 다시 역으로 해결에서 미해결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불가역적' 수사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아전인수식 해석은 흥미롭다. 한국은 '조치 이행을 확실히 하라',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더는 제기하지 말라'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 역사와 시간은 원래 불가역적이다. 위안부 관련 역사를 왜곡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불가역적인 역사를 되돌리려는 억지 행위라는 사실을 일본 정부는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