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죽음에는 의미가 실린다. 사소한 죽음은 어디에도 없다. 하물며 큰 산(巨山)이 무너졌음에랴. 현대정치의 산증인이었던 YS, 김영삼 전 대통령이 떠났다.
YS의 서거를 보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린 건, 두 사람이 보인 지독한 애증, 인연과 악연의 정치 드라마 때문이다. 한 분은 큰 산으로, 한 분은 바보처럼 살았기에 대비되는 측면이 있고, 두 분 다 부산을 정치 기반으로 큰 정치를 했다는 점에서 지역정치권에 던지는 메시지가 각별하다.
YS는 1988년 무명의 노무현을 정치에 입문시킨 사람이다. 그러나 1990년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이 결행되자 노무현은 YS와 결별했다. 호랑이(군부독재)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게 YS 의 논리였으나, 노무현은 '민주화 운동의 배신이자 밀실야합'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후 영남지역이 보수화 하고, 야도(野都) 부산의 정체성이 흔들린 것은 정치사가 보여주는 바다.
각자 갈 길을 간 두 사람은 최고의 자리에서 다시 만난다. 감정이 쌓였던지 2003년 8월 YS는 노무현 참여정부를 향해 "참으로 무능하고, 무지하고, 대책 없는 정권"이라고 독설을 퍼부었고, 2004년 탄핵 정국 땐 "일방적 국정운영 끝에 이런 결과가 온 것"이라고 쓴소리 했다. 2009년 5월 23일 충격적인 노무현의 투신 자살이 있고 난 후에도 YS는 불편한 심기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누가 옳고 바른 길을 갔는지는 섣불리 평가하기 어렵다. 현대사의 궤적이 된 큰 산과 바보의 정치적 함의가 결코 단순하지 않은 탓이다. YS는 비스마르크가 남긴 명언처럼 '정치는 가능의 예술'임을 보여주었다. 대도무문(大道無門), 민주화의 길은 그의 꺾이지 않는 신념이었다. 노무현은 지역주의 타파와 정의로운 세상을 갈구하며 한국사회의 강고한 기득권 벽에 온몸을 부딪혀 산화했다. 그는 스스로 바보가 된 듯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올곧은 선택을 결행했다.
애증과 갈등을 드러냈던 YS와 노무현, 큰 산과 바보의 시대도 한 장이 넘어간다. YS가 병실에서 유언처럼 남긴 마지막 필담은 '통합과 화합'이었다. 6년 전 노무현이 남긴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는 말과 본질적 의미가 다르지 않다. YS와 노무현은 끝내 한 궤 속에서 역사를 끌고가는 수레바퀴가 되었다. 이들이 남긴 정치적 가치와 시대정신은 생각하면 할수록 장엄하고 우뚝하다. 이들의 갈등이 정치 발전으로 이어진 것은 역설이다. 부산을 기반으로 하여 이들이 움직이고 있을 때 부산은 가장 '다이내믹'한 도시였다. 이제 누가, 부산 아니 한국의 역동적 수레바퀴를 굴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