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이민을 간 유럽인들이 1859년 사냥감으로 토끼를 24마리 데려갔다. 원래 호주 대륙에는 토종 토끼가 없었다. 정착민들은 토끼를 풀어놓고 그레이하운드로 쫓게 하고 말을 몰아 사냥을 즐겼다. 이 중 몇 마리 토끼가 도망을 쳤고, 이들이 20년 사이에 무려 100억 마리로 불어났다. 토끼는 생후 3개월부터 임신이 가능하고 1년에 30~40마리의 새끼를 낳을 수 있다고 한다. 개체 수가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원시 환경을 자랑하던 호주는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나무껍질을 갉아먹어 숲이 망가지자 토착 생물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토끼가 농작물을 죄다 먹어치우는 바람에 농민들도 농장을 버리고 떠났다. 시드니 모닝 해럴드는 1887년 8월 10일 '그것(토끼)에 감염된 지역은 어떤 조치를 취해도 가망이 없다'고 보도할 정도였다.
호주 정부는 토끼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1901년 대륙을 가로지르는 3256㎞의 거대한 철조망을 친다. 토끼 방어 철책선이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번엔 토끼의 천적을 투입했다. 개와 족제비 여우 그리고 고양이. 새로 들여온 여우와 고양이는 토끼를 없애기는 커녕 토끼와 함께 숫자가 늘어났다. 다음은 바이러스 살포. 이 작전은 토끼의 99%를 없애는 효과를 거둔다. 그러나 6년 후 바이러스에 내성을 가진 변종 토끼들이 다시 왕성하게 번식, 호주를 뒤덮기 시작했다.
당시 호주에는 토끼를 사냥할 딩고(오스트레일리아 들개)가 있었다. 토종은 아니지만 3500~4000년 전 인도와 동남아시아로부터 호주로 유입된 개가 야생화한 것이다. 그런데 딩고는 유럽 정착민들의 사냥으로 거의 멸종되다시피 했다. 딩고가 많았다면 토끼가 그렇게 과잉번식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토끼가 전염병처럼 번식한 것은 결국 호주인들의 딩고 남획으로 인한 자업자득인 셈이다.
호주 정부가 길고양이 200만 마리를 살처분키로 했다. 고양이가 호주 토종 동물을 잡아먹는 등 호주 생태계를 교란시킨다는 이유에서다. 잔인하다며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우리의 '캣맘' 논란과 같은 맥락이다.
호주에는 현재 2000만 마리의 길고양이가 서식하고 있고, 이들 때문에 호주 고유 포유류 28종이 멸종하고 120여 종이 멸종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니 생태계 보호를 위한 호주 정부 조치의 필요성에 공감도 간다. 하지만 토끼 잡으라고 들여와놓고 이제 와서 생태계 보호를 위해 몰살하겠다니, 인간에게 그런 권리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생태계의 또다른 보복을 잉태하는 처사는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