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미국 시카고에서 존슨앤드존슨이 제조한 타이레놀을 복용하고 7명이 사망한 사건이 이틀 새 발생했다. 당시 타이레놀은 존슨앤드존슨 총매출의 7%, 순이익의 17%를 차지하는 효자상품이었다. 회사는 충격에 휩싸였다. 경찰 조사 결과 회사 측의 제조 잘못이 아니라 누군가 의도적으로 판매 과정에서 제품에 독극물인 청산가리를 주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존슨앤드존슨은 즉각 소비자경보를 발령하고 타이레놀을 사 먹지 말라고 널리 알렸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시카고 지역에 배포된 타이레놀 제품을 거둘 것을 권고했지만 존슨앤드존슨은 시카고뿐 아니라 미국 전역에 뿌려진 타이레놀 3000만 병을 자진 회수했다. 1억 달러의 손해가 예상됐지만, 기꺼이 감수했다. CEO인 제임스 버크는 뒤로 숨지 않고 TV에 직접 나와 소비자들과 소통하며 불안감을 해소시켰다. 사고 1년 만에 존슨앤드존슨은 시장점유율을 회복했다. 눈앞의 이익보다 고객의 생명과 안전을 먼저 생각한 존슨앤드존슨의 수준 높은 기업윤리를 믿은 소비자들이 보낸 신뢰의 결과였다.
디젤 차량 배출가스를 조작하고 숨겨오다 들통 난 폭스바겐을 보면서 기업문화를 다시금 생각한다. 포르셰 람보르기니 벤틀리 부가티 등 최고급 자동차 브랜드를 갖고 있지만, 폭스바겐은 '북한 같은 지배구조'에다 곰팡내 나는 독재적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독일 나치 정권이 설립한 폭스바겐은 포르셰와 피에히 가문, 정부지분, 노동조합이 감사회를 나눠서 좌지우지하는 전근대적 형태다. 이러니 '스캔들의 번식지' '사고를 불러오는 구조'라는 지적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런 조직은 직진주행은 잘하지만 도로에 장애물이 나타나거나 급회전을 해야할 땐 허둥대며 사고를 내는 게 덜 떨어진 초보운전자와 비슷하다. 이번 배출가스 조작사건이 대표적이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보쉬가 2007년 문제의 소프트웨어를 폭스바겐에 납품하면서 사내 검사용이 아니라 실제 주행용으로 사용하면 불법이라고 경고했지만, 회사는 오히려 악용했다. 폭스바겐의 한 기술자도 2011년 상급자에게 배출가스 조작행위가 이뤄지고 있으며 법에 저촉된다고 보고했지만, 이 역시 무시됐다. 유럽연합(EU)도 2007년 소프트웨어 장치를 금지했고 2년 전에도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불법행위를 막지는 못했다.
아마도 보쉬가 불법을 경고했을 때 폭스바겐은 '물건만 공급하면 되지 부품업체가 이래라 저래라 말이 많아'라고 비아냥댔을 거고, 기술자가 보고했을 때는 '기술자가 건방지게 뭘 안다고…. 지금 토요타를 꺾고 세계 1위가 되느냐 마느냐 하는 회사 운명이 걸려있는데…'라며 오히려 찍어 눌렀을 것이다. 또 EU의 경고는 막강한 로비력을 동원해 무마했을 게 틀림없다. 꽉 막히고 폐쇄적인 가족중심 기업문화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CEO라도 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좋겠지만 제 눈에 안경이고,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폭스바겐의 마르틴 빈터코른이 그런 인물이었다. 독재적이고 화를 잘 내는 그는 토요타를 앞질러 세계 1위에 올라설 야망에만 불타있었을 뿐 윤리경영이나 정도경영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사퇴하면서도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며 고개 숙여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나는 몰랐다"고 발뺌하기 바빴다. 부하 직원들의 탓으로 돌리려는 듯한 그의 태도에서 독일 대표기업의 책임자다운 면모는 눈꼽만큼도 없다.
기업이 제품만 잘 만들면 되는 시대는 지났다. 상품에 윤리와 도덕성이 스며 있고, 경영 전반에 정직과 책임감 공정성 고객존중 등이 배 있어야 기업이 살아남는 시대다.
신발회사 팀버랜드는 소가죽을 사오는 브라질에서 소를 사육하느라 대규모 벌목이 이뤄진다는 그린피스 회원들로부터 6만5000여 통의 항의 편지를 받았다. 제프 스워츠 CEO는 곤혹스러웠지만 환경훼손이 없는 곳에서 가죽을 사오도록 지시해 뒷날 환경단체로부터 감사인사를 받았다. 2007년 크리스마스 때 유기농식품 유통업체 홀푸드의 한 매장에서 전산 시스템 고장으로 계산작업이 불가능해졌다. 매장 총괄매니저가 나섰다. "우리 잘못으로 불편을 드리고 시간마저 빼앗았으니 물건은 모두 공짜로 가져 가십시오. 꼭 값을 치르고 싶으시다면 그 돈은 자선단체에 기부하십시오." 고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홀푸드는 언론에 '고객과 사회를 우선 생각하는 기업'으로 대서특필됐다. 홀푸드는 그날 물건값 4000달러로 40만 달러의 홍보효과를 거뒀다.
형제의 난, 부자지간의 혈투 등 우리나라 재벌기업의 지배구조는 폭스바겐 저리 가라다. 제왕적 경영과 폐쇄주의 비밀주의는 기업의 추진력을 담보하는 비밀병기라도 되는 양 호도되기도 한다. 이런 조직에 기업윤리와 위기관리시스템이 있지도 않을 뿐더러 있더라도 정상적으로 작동할 리는 만무하다. 존슨앤드존슨이 될 것이냐, 폭스바겐이 될 것이냐. 우리 기업들이 선택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