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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칼럼] 영화로 하나 되는 아시아

아시아 영화 합작·공동 배급 문화적 실크로드 가능성 충분

영상위 '아시아영화진흥기구' 추진에 정부·영진위 협력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5-10-08 19:00:08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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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김자경 기자
타이완의 영화감독 허우샤오시엔(侯孝賢)이 신작 '자객 섭은낭'을 들고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았다. 올해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이 영화는 그야말로 명불허전. 지난 3일 필자는 감독의 단짝인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과 함께 시민 소통 프로그램인 '팝콤톡톡'을 진행했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영화 얘기로 이어졌고, 필자는 영화의 마지막 대사를 끄집어냈다. "섭은낭이 그를 신라로 데려다줄 겁니다."

당(唐)나라 허베이(河北) 일대를 무대로 하는 영화에서 뜬금없이 왜 신라냐고? 영화는 생략했지만, 원래 시나리오에서 남자 청년은 '한국계' 일본인이다. 그것도 신라에서 왜(倭)로 건너가 호류지(法隆寺) 건축에 참여한 장인의 후예다. 그러니까 마지막 대사는 이 청년이 신라를 거쳐 다시 왜로 떠나는 길까지 섭은낭이 '보호'해줄 거란 얘기다. 그럼, 영화 '섭은낭' 속편은 신라를 무대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필자의 물음에 감독은 흔쾌히 답했다. 속편은 한국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부산에서 만들겠다고. 부산시가 당시 풍경을 재현하고, 신라의 배가 떠다니는 촬영장을 마련해주면, 부산에서 찍겠다고. 정말 놀랍고도, 고마운 일이다. 감독의 성품을 볼 때 빈말은 아닐 거다. 2001년 '섭은낭'이란 무협영화를 찍겠다고 처음으로 밝힌 곳도 타이완이 아닌 부산이었으니까. 이것은 무엇보다 김동호 위원장과의 우정 덕분이고, 부산국제영화제의 힘이라고 믿는다.

■부산영화제의 힘

영화 '어벤져스 2'의 서울 촬영을 떠올려보자. 서울시가 들뜬 데 비해, 제작비의 30%나 환급해주며 촬영한 장면으로 기억에 남는 게 뭔지. 또 도시를 때려 부수기만 하는 장면으로 무슨 관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 반면 부산 기장 글로벌영화센터에 신라 항구를 재현해놓으면, 그 이후 활용은 물론이고, 관광 효과도 클 거다. '섭은낭'은 한·중·일을 아우르며, 아시아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영화다. 또 허우 감독은 누구보다 지역의 풍경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부산시는 감독의 제안을 경청하기 바란다.

한편 부산국제영화제뿐만 아니라, 부산영상위원회가 지난 4일과 5일 이틀간 마련한 '아시안영상정책포럼' 또한 영화의 측면에서 아시아의 협력을 실감 나게 해줬다. 영상위는 지난 10년 동안 20개국을 아우르는 '아시아영상위원회 네트워크'(AFCNet)를 꾸려왔는데, 올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제안을 했다.

영화 촬영 지원과 공동 제작을 넘어 세일즈와 해외 배급까지 함께 추진하는 '아시아영화진흥기구'의 설립을 제안한 거다. 이것은 아시아 영화의 산업적 가치를 더 높이는 것이며, 아시아 영화산업의 동반성장을 민간 단계에서 국가 간 협력 차원으로 승격시키는 것을 뜻한다. 이 제안을 담은 '부산공동선언문'이 체결된 지난 5일은 공교롭게도 미국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타결된 날이었다.

■영상위의 제안

TPP가 가져올 '영향 평가'로 나라 안팎이 떠들썩하지만, 필자는 부산공동선언문에서 조심스럽게 희망의 실마리를 찾는다. 사실 TPP 논란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아시아의 시대'가 왔다는 것을 말한다. 현재 전 세계의 '3대 메가 협상'으로 TPP, '역내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이 있는데, 이 가운데 TPP와 RCEP의 전장이 모두 아시아다.

미국이 주도하는 TPP와 중국이 이끄는 RECP 사이에서 한국은 '딜레마' 상황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미국과 중국의 경제 교류가 확대일로에 있다는 점에서 TPP와 RCEP가 궁극적으로 상생 관계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견해에 힘이 실린다.

당장 TPP 참여국 가운데 일본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와 같은 아시아 7개국은 모두 중국의 RCEP 협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래서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양자택일'에서 벗어나, TPP와 RCEP의 교집합인 아시아 7개국과의 관계 개선에 힘쓰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결국, 두 협정의 전장은 아시아이며, 7개국의 향방이 미래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할까. 첫 단추는 문화다. 경제가 외교의 하드웨어라면, 문화는 소프트웨어다. 경제가 외교의 토대라면, 문화는 무기다. 더구나 영상문화는 사람의 시각에 호소한다는 면에서 강력한 무기다. 여기서 뜻깊은 것은 이 7개국을 포함한 아시아 16개국의 영화정책자가 모두 부산영상위가 제안한 '아시아 영화진흥기구' 창립을 위해 서명했다는 거다. 필자가 '부산공동선언문'에서 희망의 실마리를 찾는다고 말한 이유다.

■부산의 역할

마침 오는 12일부터 부산에서 16개 RCEP 참여국이 모여 제10차 협상을 연다. 이제 TPP가 타결되었으니 RCEP 협상도 빨라지게 됐다. 이 점에서 한국 정부와 영화진흥위원회가 아시아 각 나라와 함께 아시아 영화진흥기구를 세워, 영화산업의 동반성장과 '영화를 통한 하나의 아시아'를 추진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김동호 위원장이 포럼에서 밝힌 것처럼 아시아 국가 간의 영화 합작과 공동 배급은 '문화적 실크로드'가 되어 경제 교류를 순탄하게 선도할 것이며, 여기서 부산의 역할 또한 클 것이다. 부산은 '아시아영상위원회 네트워크'의 허브인 영상위를 갖췄고, 아시아 영화를 발굴·교류하는 국제영화제를 열며, 유네스코가 아시아 최초의 영화창의도시로 선정한 도시이다. 한국을 대표해 아시아 영화진흥을 추진할 수 있다.

허우 감독의 '섭은낭'처럼 아시아 영화인이 각자 서구적으로 정형화된 영화언어에서 벗어나 아시아적 가치를 구현하며, 각 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표현하고 공유한다면, 정말이지 '영화를 통한 하나의 아시아'가 이뤄질 것이다. 정부와 영진위는 아시아 영화진흥기구 설립에 힘써주기 바란다.

필로아트랩 대표·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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