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0월 3일 독일이 통일을 완수한 날, 필자는 유학생으로 독일 현장에 체류하고 있었다. 당시 독일 국민이 감격해 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는 언제 저렇게 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라며 마냥 부러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독일 통일 초창기 많은 사람은 동독이 서독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하는 시기와 동·서독 사이에 깊이 자리 잡은 이질감이 해소되는 시기를 한 세대(약 25년) 정도로 예측했다. 이제 독일 통일 25주년을 맞아 동·서독의 사회적 통합은 거의 완성된 시점이다. 그렇다면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가 독일 통일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과연 무엇일까.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분단된 한국과 독일은 분단의 원인과 역사가 각각 다르다. 한국은 아무런 잘못 없이 전쟁의 희생자가 됐으며 또한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겪어 분단의 고통은 독일보다 더욱 심했다. 독일 분단시대의 통일정책은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제시해 주었다.
1972년 동·서독의 기본조약(Grundvertrag)으로 양국이 관계를 개선할 즈음 한반도에서도 1972년 7·4 공동성명으로 남북관계에 잠시나마 화해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1989년 11월 9일 저녁 동독 공산당(SED) 균터 샤보스키 대변인의 말 실수로 순식간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자 서독의 발빠른 외교와 경제적 지원으로 1990년 10월 3일 통일을 완수하는 데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독일 통일이 국가 대 국가(서독과 동독) 즉 기본법 146조에 의한 국가건설의 통일이 아니라 기본법 23조에 의한 흡수통일이었기 때문이다.
독일이 통일을 조속하게 완수하자 한국 국민도 환호했지만 한반도에서는 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에 만족해야만 했다.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일되는 것을 목격한 북한 체제는 흡수통일에 강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핵개발로 세계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독일 통일 이후 서독의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목격하고 한반도 통일비용에 대한 논쟁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그러나 분단비용과 분단의 고통이 경제적 부담보다 더 크다는 주장을 새겨 들을 필요가 있다.
베를린 장벽 붕괴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통일은 어느 한순간에 사소한 원인으로 갑작스럽게 찾아올 수도 있다. 동독 정부와 통일협상을 진행했던 볼프강 쇼이블레 당시 서독 내무부 장관은 "통일이 되는 과정은 댐으로 막혀 있던 다른 높이의 두 강물이 천천히 질서 있게 합치지 않고 한꺼번에 큰 소용돌이를 치면서 뒤섞이기 때문에 예측 가능한 문제점은 사전에 검토하고 대비해야만 큰 혼란이 없을 것" 이라고 우리나라에 충고하고 있다.
한국과 독일은 정치체제, 경제력, 정치문화, 사회적 구조 등 모든 것에서 많은 격차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독일 통일에서 지적된 문제점을 분석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분명한 것은 한반도가 통일되면 독일의 통일보다 더 많은 문제점이 노출된다는 예견이다. 한반도는 분단 기간이 65년이 넘었고 남·북한 주민들의 친인척 방문이나 언론매체를 통한 교류가 없었고 더욱이 한국전쟁이라는 내전을 겪었기 때문에 통합에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공동체 의식과 서양과 다른 정서(즉 정과 한)를 가지고 있기에 어쩌면 우리 민족은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 수월하게 한반도 통일을 이루고 사회적, 경제적 통합을 예상보다 빠르게 이뤄낼 가능성도 있다.
독일통일을 관찰 분석한 결과, 무엇보다 우리는 북한의 내부사정 혹은 국제관계의 급격한 변화로 앞으로 한반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둘째로 독일 통일의 밑거름이 된 '동방정책(Ostpolitik)'처럼 정부는 일관성 있는 통일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셋째, 핵개발과 미사일로 세계를 협박하는 북한의 돌발행동을 방지하면서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유도, 한반도의 상황이 통제불능의 혼란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국제기구와 한반도 주변 국가들과 외교협력 관계를 증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넷째, 남북한 간에 오래 지속되어 온 분쟁과 갈등을 극복할 통일의 당위성에 대한 범사회적인 합의와 함께 사회구성원들이 통일에 대해 강한 의지를 함양하는 것이 필요하다.
통일은 제3자가 우리에게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통일에 대한 강한 열망이 가슴속에 살아 있을 때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경성대 평생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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