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회초리를 들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자식이 말을 안들을 때 어머니는 참다 참다 감춰놓은 싸리 회초리를 꺼낸다. 반성의 기미가 없을 땐 더 세게 종아리를 후려친다. 어머니는 때리면서도 그 회초리가 아파 남몰래 울곤 한다.
부산의 시민단체들이 롯데그룹(이하 롯데)에 대해 회초리를 들었다. '좋은 롯데 만들기 부산운동본부'라는 단체까지 결성한 걸 보면 단순한 엄포가 아닌 것 같다. 운동본부에는 부산참여연대 경실련 YMCA 등 22개 주요 시민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롯데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드러난 그룹 수익의 일본 유출, 이해하기 힘든 지배구조, 지역사회에 대한 미미한 기여 등 롯데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는 양상이다.
재계 5위 롯데는 외형적으로는 크게 성공한 기업이다. 울산 삼동면 출신의 신격호 총괄회장은 1941년 부산항에서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가 맨손으로 롯데 왕국을 일구었다. 작가 정순태는 '신격호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그를 동아시아 상전(商戰)에서 승리한 해상왕 장보고와 비교했다. 신격호 일가의 재산은 약 45억 달러로 세계 136위다. 이 엄청난 부의 바탕에 '부산 시장(市場)'이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롯데에 대한 부산시민의 애증은 그래서 남다르다. 사랑하지만 미워지고, 이해하지만 괘씸한 심정이 그럴까. 시민들은 롯데를 욕하면서도 야구를 응원하고 물건을 사준다. 어떨 땐 이러한 양가감정 자체가 롯데의 정체성이 아닐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국감자료를 보면 롯데는 지난해 부산에서만 1조 8000억 원 상당을 벌어갔지만 지역에 대한 순수 기부는 16억 원 정도에 그쳤다. 롯데 측은 "그건 법정 기부금 합산액일 뿐이고, 부산에 오페라하우스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시민들의 머릿속에는 '롯데=짠돌이'라는 생각이 넓게 퍼져 있다.
그런데도 부산시민들은 롯데에 대한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으려 한다. '좋은 롯데 만들기 부산운동본부'라는 명칭만 봐도 그렇다. 지난달 11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경영권 분쟁 등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자 시민단체들은 '나쁜 롯데재벌 개혁 시민운동본부'를 출범시키고 활동을 전개했다. 그후 논의 과정에서 많은 의견이 수렴되어 '나쁜'이 '좋은'으로 바뀐 건 아주 시사적이다.
롯데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시민단체들이 제시한 요구사항에 담겨 있다. 롯데백화점 4곳·롯데마트 9곳의 현지법인화, 부산에 사회적 공헌센터 건립, 청년 정규직 일자리 계획 제시, SSM 출점 금지, 지역제조·유통업체 상품취급 비율 확대 등은 롯데가 마음만 먹는다면 추진할 수 있는 것들이다. 시민단체들은 개선이 이뤄지지 않을 땐 롯데 불매운동을 하겠다고 경고했다.
롯데는 지금 신뢰 위기에 내몰려 있다. '왕자의 난'으로 신격호 총괄회장의 이미지가 흐려진 것은 안타까운 부분이다. 신 총괄회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부산 시장의 중요성을 말하곤 했다. 신동빈 회장은 국회에서 "롯데는 분명히 한국기업이며 경영구조 개선에 나서겠다"고 천명했다. 시민사회의 회초리 때문이 아니라, 롯데 스스로 변화해 신뢰 회복에 나설 때 '포스트 신격호' 체제가 순항할 것이다. '어머니의 회초리'보다 더 무서운 건 어머니의 외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