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도전·재도약 '골든타임'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학문을 수호해야 할 교수가 대학본부 건물 옥상에서 몸을 던진 사실이. 충격적이고 참담한 일이다. 대학교수가 민주주의를 살리고자 몸을 던진 것은 사상 초유의 사건이다. 그 충격파를 통해서야 우리 사회는 지금 대학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무뎌져 있고, 소통이 안 되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총장 직선제 사수를 부르짖으며 산화한 부산대 국문과 고현철 교수의 장례식이 21일 빗속에서 거행됐다. 유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동료 교수와 학생들은 비통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은 '거대한 각성'을 던져놓고 간 고 교수의 유지를 되새겼다.
고 교수는 문학평론가·시인으로도 활동한 다재다능한 지식인이었다. 평소 조용한 성품에 주관이 뚜렷했고 연구 자세가 누구보다 치밀·치열했다고 한다. 교육부가 '국립대 선진화'를 내세워 총장 간선제를 요구하는 등 대학 자율성이 심각하게 침해되기에 이르자 고 교수는 깊은 고뇌 끝에 희생을 선택했다.
그 직후 간선제가 불가피하다고 했던 김기섭 부산대 총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했고, 부산대는 직선제 유지를 결정했다. 지난 20일에는 전국 9개 거점국립대 교수단에서 '직선제 회복'을 천명했다. 선언적이나마 직선제의 불길이 다시 번지는 모습이다. 희생의 처절한 대가가 아닐 수 없다.
고 교수의 유서에는 매우 의미심장한 대목이 있다. "부산대학교는 현대사에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 보루 중 하나였다…. 대학의 민주화는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의 보루이다. 그래서 중요하고 그 역할을 부산대가 담당해야 하며,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
고 교수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부산대는 총장 직선제 사수 투쟁의 선봉이 돼 버렸다. 전국의 국공립 대학은 물론 사립 대학, 학술단체, 시민단체들이 부산대를 구심점으로 모이고 있다. 전국적 지원과 함께 연대 투쟁 조짐도 감지된다.
부산대의 책무가 실로 막중해졌다. 부산대는 사실 모든 지방 국립대의 맏형이자 제 2도시 부산의 자존심과도 같은 대학이다. 흔들려서도, 무너져서도 안 된다. 총장 직선제는 앞으로 닥칠 파장의 예고편일 수 있다. 돈 줄을 쥐고 막강 권력을 행사하는 교육부에 맞서려면 무엇보다 부산대가 똘똘 뭉쳐야 한다. 직선제를 결정한만큼 더 이상 학내 분란은 없어야 하고, 민주성과 정당성을 무기로 외부의 원군을 만들어야 한다. 거대한 투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부산대로선 새로운 도전이자 재도약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부산대는 자랑스러운 민주화 운동의 전력을 갖고 있다. 어제 고 교수의 영결식이 열린 부산대 10·16기념관은 그 이름이 말해주듯 '민주화 운동의 성지'임을 웅변하는 시설이다. 부산대 제2도서관 앞에는 '부마민중항쟁탑'도 세워져 있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자랑스런 학생운동의 자취다. 불꽃 형상의 항쟁탑에 적힌 문구가 새롭게 다가온다. '억눌린 우리 역사/ 터져나온 분노/ 매운 연기 칼바람에도/ 함성소리 드높았던/ 동트는 새벽벌/ 시월이 오면/ 핏발 선 가슴마다/ 살아오는 십일육/ 동지여 전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