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지구는 돈다." 저 유명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종교재판 후 내뱉은 말이다. 지동설을 굽히지 않았던 그는 '철학적으로 우매하고 신학적으로 이단적'이라는 이유로 종신 가택연금형을 받았고, 사후 장례식과 묘비 세우는 것도 금지됐다. 또한 평생 지동설을 입 밖에 내지도 않겠다는 굴욕적인 맹세를 해야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갈릴레이의 주장이 사실로 밝혀지자 교황청은 뼈아픈 심정을 감춘 채 애써 외면해야 했다. 그 잘못을 인정하기까지 무려 400년이 걸렸다. 교황 바오로2세는 당시의 조치가 "비극적 상호 이해 부족으로 비롯된 실수였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설령 과학적 오류가 있었다 하더라도 교회 법정이 판단할 영역이 아니라는 점을 시인한 것이다.

현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교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듯 무척 관용적인 자세를 보여준다. 그는 창조론과 진화론을 상호 배척 관계가 아니라고 천명했다. 우주의 기원인 빅뱅(대폭발)을 인정하면서 이를 신의 계획이라 설명했고, 진화가 나타나기 위해선 생명체의 창조가 먼저 있어야 한다고 해석했다. 진정 포용과 화해의 정신이 배어있는 표현이 아닌가.

해묵은 갈등은 이처럼 단시간에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도 마찬가지. 풍산 류씨와 의성 김씨 가문의 자존심 대결은 유명하다. 퇴계 이황의 두 수제자인 서애 류성룡과 학봉 김성일 후손들은 400년에 걸쳐 서원에 모실 왼쪽 위패 위치를 놓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류씨 문중은 벼슬이 높았던 서애를, 김씨 측은 나이가 많은 학봉을 내세웠다. 그리고 6년 전에야 각기 흩어진 위패를 다시 모시기로 하면서 '좌 서애, 우 학봉'으로 어렵사리 합의에 이르렀다.

1501년 갑장인 퇴계와 남명 조식 관계도 만만찮다. 이들은 낙동강을 경계로 '좌 퇴계, 우 남명'으로 불리며 교류를 하긴 했지만 평생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사후엔 피비린내 나는 대결이 펼쳐졌다. 인조반정을 계기로 퇴계학파 남인은 남명학파 북인을 철저히 숙청하면서 성리학의 중심맥을 형성했다.

이제 그 후손들이 반목의 과거사를 딛고 500년 만에 사상적 만남을 다시 시작하려 한다. 두 거목에게서 배울 바를 찾고 선비문화를 함께 알리자는 취지로. 학술 대회와 제례 행사에 나란히 참석하겠다니 흐뭇하기 그지없다. 공동의 미래를 보자는 넬슨 만델라의 화해리더십이 새삼 되새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