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성과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상품들은 널려 있다. 각선미를 살려주고, 힙 업 효과를 연출하는 핫 아이템은 무엇일까. 하이힐이 정답. 굽이 10㎝를 훌쩍 넘어 걷기조차 힘든 킬힐이 여성들의 로망으로 자리한 지 오래다. '높게, 더 높게'를 지향하는 하이힐.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이 무려 40㎝높이의 킬힐 차림으로 패션쇼에 나섰다 우당탕 넘어지면서 체면을 구긴 사례는 유명하다.

사실 하이힐은 그리 아름답지 않은 과거를 숨기고 있다. 위생관념이 청결치 못했던 중세 프랑스 거리는 인분 등으로 곳곳이 '지뢰' 투성이었다. 그래서 상류층은 굽이 높은 구두가 필요했고 하이힐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건 굽이 높아진 게 신분과도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 한마디로 '높은 계층'의 권력과 재력 과시용이었던 셈이다.

이는 동물의 왕국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상대보다 더 강하고 힘이 세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몸을 부풀리는 위장술을 곧잘 쓴다. 사람도 마찬가지. 신라왕관에서 보듯 지배층의 키를 높이는 수단이 동원됐다. 남성귀족들의 풍성한 가발이나, 귀부인들의 우스꽝스러운 고층 헤어스타일도 뽐내기 아이템들이었다. 하이힐 역시 키가 커보이도록 굽이 높아졌다. 15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쵸핀'은 50㎝에 달할 정도였다. 이 정도면 혼자서 걷기가 불가능했기에 몸종, 다시 말해 인간지팡이가 반드시 부축해야 했다.

건강 측면에서 볼 때 하이힐은 독가시를 가득 품은 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어 경계해야 한다. 굽으로 인해 무게중심이 앞쪽으로 쏠리는 반면, 상체가 뒤로 젖혀지고 엉덩이가 올라가면서 여성미가 살게 된다. 문제는 발가락에 가해지는 고통. 압력밥솥의 수배에 달하는 힘이 짓누른다. 오래 신으면 발가락이 휘거나 척추 질환, 하지정맥류를 일으키는 '가면 쓴 고문틀'이다.

그런데 킬힐이 요즘 여성들의 호신도구로 각광받고 있다. 미국에서 '하이힐 호신술'을 가르치는 도장이 크게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덤벼드는 치한에게 뾰족한 굽으로 내리찍는 동작, 다리를 쭉 뻗어올려 상대의 급소를 가격하는 기술 연마에 여념이 없다. 순간 대처가 중요하기에 빨리 벗을 수 있는 하이힐이 인기라고. 각선미를 자랑할 수 있는데다 호신용 무기도 따로 챙길 필요가 없다. 이러니 하이힐을 신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젊은 여성들은 헷갈린다. 아름다움과 안전, 그리고 건강 그 무엇도 포기할 수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