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변화다. 변화가 시대의 화두다. 이 시대는 궁한 시대다. 앞이 막히면 돌아가든지, 부수고 가든지, 넘어가든지 해야 한다. 변해야 비로소 길이 열리는 것이다. '허슬러의 법칙'이란 게 있다. 로버트 그린이 '51번째 법칙'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거리의 마약상인 허슬러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경쟁자, 경찰, 구매자 등 온갖 주변의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해야 한다. 변화를 놓치는 순간, 탈락이다.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변화는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다.

정치가 그 가운데 가장 시급하다. 고질적인 분열과 갈등, 분노와 좌절, 야유와 욕설…. 이런 쓰레기 더미 속에 그나마 희미한 빛이 보이는 건 다행이다. 오늘날의 대한민국 정치는 하품(下品)이다. 이념과 안보로 덧칠된 싸구려 상품(商品)이 범람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이념 장사와 안보 장사로 이득을 챙기기에 바쁘다. 언론이라고 뭐, 다를까 싶다. 그런 개념없는 정치 풍토 속에 사회적 병폐들이 만연한 것이다.

압축해서 이야기하면, 변화의 실체는 '유승민과 그 아이들'이다. '입밖에 없는 유승민이 뭐라고.' 그런 말들도 한다. 옳은 말이다. 하나, 단순히 유승민만이 아니다. '홀로'라면 변신 정도로 그친다. '더불어'이니 변화에 주목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국회 대표연설을 보자. '정의롭고 공정하며, 진실되고 책임지며, 따뜻한 공동체 건설을 위해 땀 흘리는 보수.' 어째 좋은 말은 죄다 모아 놓았다. 듣기에 좀 민망하지만 일단 그의 지향점이라고 쳐 주자.

청와대와 정부를 향한 외침은 일관성이 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다.' 박근혜 대통령과 맞짱이다. '부자증세, 법인세 성역 아니다. 단기 부양책 재정 건전성만 해친다.' 청와대와 정부를 향한 신랄한 비판이다. 긴 연설문엔 처절하게 비판이 나열됐다. '양극화와 공동체 붕괴 위기, 가진자 기득권세력 재벌, 인구재앙, 제조업 위기, 가계 부채, 법앞의 평등….' 그러고는 나름 답을 냈다. 합의의 정치, 사회적 경제, 혁명적 변화, 성장과 복지 균형, 공감과 공존, 사상 표현의 자유, 세금과 복지의 대타협 기구….

내용만으로 보면 반정부 세력이다. 보수 꼴통의 시각으로 치면, 체제 전복 세력 내지 종북이 될 법도 하다. 연설문만 보면 우리 사회는 재벌에 치중된 불평등한 사회다. 공정한 경쟁과 법 앞의 평등이 확보되지 않은 기울어진 사회며, 무책임하고 거짓되며 냉정한 사회다. 성장세는 붕괴되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조차 누리지 못하는 덜떨어진 사회다. 혹자는 야당의 대표연설 같다고 하고, 혹자는 말만 번지르르하다고 한다.

다 맞는 말이다. 그는 누구인가. 부유하게 태어난 정치인 2세다. 그런 면에선 김무성 대표, 남경필 경기지사, 김세연 의원과 같은 카테고리다. 대통령 후보들의 책사, 보수의 본산 TK의 적자…. 그가 걸어온 길과 대표 연설은 일면 엇갈리는 측면이 있다. 그건 인정하자. 한때는 친박 본류였고, 또 한때는 탈박이었다. 한데 원내대표로서 그가 보여준 태도는 반박에 다름 아니다. 대선을 향한 변신의 몸부림과 정치적 행보인가. 아니면 변화의 모색인가.

그의 주변을 보자. 김세연 의원. 국회 선진화법은 그의 작품이다. 한때는 여당의 발목을 잡았지만 예산 국회에선 야당의 고삐가 됐다. 법정 회기 내 예산안 통과는 그래서 더 의미가 깊다. '경제 민주화는 재벌을 공격하자는 게 아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 공정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그게 시장경제 아니겠는가. 보수는 퇴행이 돼선 안 된다.' 대충 그의 생각은 이렇다.

다 이런 생각 때문이다. 원내대표 경선 때 이주영 의원을 돕지 않고 유승민 의원을 택한 이유가 그렇다. 그 생각의 기저에는 김종인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박근혜 정부의 어려움은 김종인을 버린 데서 비롯됐다." 좀 극단적인 평가지만 그는 이를 부인하지 못한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공정경쟁과 법 앞의 평등을 이뤄내지 못했으니 말이다.

김종인이 뿌린 씨앗은 여기저기 싹을 틔우고 있다. 그런 느낌이다. 고려말 목은 이색에 비견하면 물론 좀 과할 수 있다. 하나, '유승민과 그 아이들'의 역할에 따라서는 그렇게 되지 말란 보장은 없다. 그들은 일단 기존 정치세력과 생각의 궤를 달리한다. 합리성, 상식, 균형감각 이런 게 보인다. 이걸 중도성향으로 읽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어떤가. 새누리당의 대안세력, 또는 '현대판 신흥사대부'. 너무 나간 건가?

이들이 시대를 바꾸는 건 지나친 기대일 것이다. 그 정도는 아니라도 당내 무게 균형추는 될 듯하다. 아니면, 천칭 저울이든지…. 과거 정치의 유산이랄까, 자산이랄까. 그걸 등에 업은 정치는 박근혜 정부로 끝이 난다. 3김과 박정희라는 그림자가 지워진 뒤 공백기가 도래한다. 그 공백을 누가 메울 것인가. 대한민국 정치가 바야흐로 큰 전환점을 맞고 있는 셈이다. 변화를 읽는 자, 변화를 주도하는 자, 누구인가. 그가 세상을 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