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에서 촬영에 들어간 '페이션트 제로(patient zero)'가 새로운 차원의 좀비 공포 영화로 벌써부터 관심을 받고 있다. 의학 스릴러 '아나토미' 연출로 유명한 슈테판 루조비츠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지능을 갖춘 살인마 좀비 '더 인펙티드'를 내세운다고. 주인공이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첫 감염자(페이션트 제로)'를 찾는 과정이 스토리 라인. 카리 앤드류스 감독의 바이러스 공포영화 '캐빈 피버:페이션트 제로'도 정체불명 전염병의 첫 번째 감염자가 중심인물이다.

이 영화 전편의 제목은 '캐빈 피버'(2002), '캐빈 피버2'(2009)인데, 3편에 '페이션트 제로'가 붙은 것은 지난해부터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에볼라 바이러스의 영향인 듯.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에볼라의 진원지인 서아프리카 기니 남부를 중심으로 '페이션트 제로'를 찾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마침내 지난해 10월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 연구진이 추적 조사 끝에 기니 국적의 두 살짜리 남자아이(에밀 우아무노)가 첫 감염자임을 밝혔다.

기니 남부 열대우림 지역인 멜리안두 마을에서 살았던 에밀은 2013년 12월 2일 갑자기 고열과 구토를 일으키고 흑변을 보기 시작한 지 나흘 만에 숨졌다. 그 후 한 달도 안 돼 에밀의 어머니, 4살 된 누나, 할머니가 비슷한 증세를 나타내더니 차례로 숨을 거뒀다. 에볼라는 금세 멜리안두 마을 전체로 퍼졌다. 연초 열린 에밀의 할머니 장례식에 참석했던 마을 주민들이 하나둘씩 쓰러진 것. 멜리안두는 기니와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가 만나는 국경지대여서 에볼라가 서아프리카 3개국으로 확산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페이션트 제로'인 에밀의 감염경로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페이션트 제로'는 지난해 에볼라 바이러스 공포와 더불어 세계적인 유행어가 되면서 지난 2월 옥스퍼드 사전에 공식 등재됐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던 모니카 르윈스키가 최근 TED 콘퍼런스에 자신을 "사이버 폭력으로 파괴된 '페이션트 제로'"라고 표현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사이버 마녀사냥'의 희생자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 '온정적 인터넷(compassionate internet)'을 제안했다. 이것은 인터넷 이용자가 남을 배려하는 인터넷 문화를 말한다. 사이버 폭력의 '페이션트 제로'가 제안한 온정적 인터넷은 악플문제가 끊이지 않은 우리 사회에도 공감을 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