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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어느 은퇴 공무원의 고민 /박무성

월 300만 원 연금도 부인 간병비 감당못해…확실한 노후대책 필요

구체적 미래 염두에 둔 증세·복지 논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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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공직에서 정년퇴임한 K 씨는 매달 300만 원이 넘는 연금을 받는다. 그의 표현대로 '매일 꼬박꼬박 통장에 10만 원씩 생활비가 꽂히는' 셈이다. 국장급 고위공무원 출신이지만, 아무 일도 안 하면서 '국록'을 이처럼 축내도 되나 하는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자식들 결혼해서 분가시켰고, 은행빚 없고 작은 아파트 한 채 있으니 저축하고 살 만큼 풍족하진 않지만 그다지 아쉬운 형편도 아니었다. 가끔 후배들 만나 밥 한 끼 살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부인이 갑자기 쓰러져 대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했다. 수술비는 의료보험이 적용돼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간병이었다. 환자의 병세로 봐서 24시간 간병해 줄 사람이 필요한데 가족 중에는 아무도 그럴 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다. 자신이 진종일 간병을 하기에는 힘이 부쳤다. 마지못해 간병인을 썼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하루 8만 원, 한 달에 200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이 드는 것이다. 한두 달은 자식들 도움으로 견뎠지만, 몇 달 지나자 당장 돈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빚을 냈다. 부인의 병세도 제법 갈 것 같다. 아내 건강도 염려스럽지만, 앞으로 생활도 여간 걱정이 아니다.

K 씨는 제대로 노후설계를 하지도 못했지만,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다고 했다. 부부 두 사람은 병원신세 지지않고 언제까지나 건강할 줄 알았지 간병인을 둬야 할 만큼 심각한 질병이 닥쳐올지는 몰랐다는 것이다. 자신의 연금 정도면 부부 둘이서 별 어려움없이 살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그는 현직에 있을 때 실손보험 하나 들어놓지 않을 걸 무척 후회했다. K 씨 사례는 우리 사회의 노후생활이 얼마나 취약하고 위태로운지 여실히 보여준다. 고액 연금자가 이럴진대 많아야 100만 원 남짓한 국민연금에 노후대책의 전부를 기대다시피 하고 있는 사람들이야 말 할 것도 없는 일이다.

40, 50대 중장년층이 노후를 염두에 두면서 흔히 착각하는 게 있다. 머잖아 '나도 병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통계적으로 평생 암에 걸릴 확률이 30%가 넘지만 자신은 '열외'로 간주한다. 낙관적인 기대를 탓할 수는 없으나 위험한 자기 함정이다. 요즘에는 암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한들 전체 인구를 보면 미미한 수준이다. 암뿐만 아니라 치매, 뇌혈관 질환, 예기치 못한 사고 등을 감안하면 이 비율은 훨씬 높아진다. 지금 50대가 앞으로 30~40년을 더 산다면 이 기간 중 10년은 질병을 안고 살아야 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부부의 경우라면 둘 중 하나는 병원 신세를 진다고 보면 된다. 확률적으로 그렇다.

불과 10년 뒤 한국에는 심각한 '노후난민' 사태가 빚어진다는 경고는 이런 배경에서다. 세계 최고의 고령화 속도에다 개개인이 노후를 대처할 수 있는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중위소득은 419만 원(2013년, 4인 가구 기준)이다. 전국 가구를 소득에 따라 한 줄로 세웠을 때 딱 중간이 이 만큼이라는 거다. 이 정도 소득수준이라면 소득 하위 60%, 즉 1~3분위 계층은 개인보험 같은 자발적인 노후대책은 사실 어렵다고 보는 게 맞다. 해결책은, 복지밖에 없다.

지난 대선 이후 2년여 만에 다시 증세와 복지 논쟁에 불이 붙었다. 현실은 절박한데 계속 헛돈다는 방증이다. '증세 없는 복지' '보편복지' '선별복지' 등 온갖 수사가 난무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져 공허하기는 여전히 마찬가지다. 급기야 "복지 과잉은 국민들을 나태하게 만든다"는 발언도 나온다. 사회복지 지출비율(10.4%)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우리나라에서, 생계가 어려워 은퇴 아닌 '반퇴'를 해야 하는 현실에서 이런 소리가 왜 나오는지 의문이다.
복지 예산이 100조 원을 넘었지만, 복지체감도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복지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이뤄놓은 무상급식이 통째 흔들리고, 무상보육은 재원 확보조차 어렵다. 무상급식 예산은 연간 2조 원 남짓. 만약 2005년 도입된 종부세가 제대로 시행됐다면 매년 3조~4조 원을 거둘 수 있었다. 법인세 역시 당초 25%에서 20%로 단계적으로 인하되면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간 37조2000억 원이 감소했다. 증세와 복지 논쟁이 퇴행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K 씨 경우에서 보듯, 국가공동체가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을 깔아주지 않는 한 개인이 안정적인 삶을 담보할 절대장치는 없다. 그래서 복지는 권리이자 책임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여느 복지선진국처럼 월급의 30~40%를 공제하는 대신 죽을 때까지 병원비는 물론 자식들 대학등록금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세금 더 내는 데 찬성하는 국민이 많지 않을까. 정직하고 구체적인 미래를 놓고, 아주 까놓고 증세와 복지를 이야기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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