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쓴 '갈리아 전쟁기'는 기록물의 고전이다. 군사적 전략을 다룬 내용도 일품이지만, 문체가 사실적이고 간결하다. 전쟁에서 막 돌아온 총사령관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옆에서 얘기를 들려주는 듯한 생생함이 있다. 자신을 카이사르라는 3인칭으로 객관화해 역사의 한 인물로 등상시켜 설득력을 높여주고, 인간과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력까지 보여준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가 "반했다"고 고백했을 정도로 절묘한 스토리텔링이다. 눈여겨 볼 것은, 지략과 필력을 겸비한 카이사르의 재능이 모두 정치적 수단으로 철저히 활용되고 있다는 것. '갈리아 전쟁기'는 일종의 회고록인데, 2100여 년 전 이미 회고록 정치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잘 쓴 정치 회고록으로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낸 '나의 인생'을 들 수 있다. 불우한 어린 시절과 극복 과정, 정치와 권력, 가족에 대한 시각 등을 명료한 문체에 담아냈다. 스캔들을 낳았던 르윈스키에 대해서도 '쿨하게' 털어 놓았다. 그 덕분인지 발매 1주일만에 100만 부가 팔리는 등 꾸준히 인기다. 질세라 부인 힐러리도 지난해 6월 '힘든 선택들'이란 회고록을 냈다. 출판사가 선인세로 142억 원을 지불할 정도로 전 세계 언론의 폭발적 관심을 받았으나 초창기 반짝 인기 후에는 시장 반응이 무덤덤한 편이라고. 엄청나게 달라붙은 명성만 믿고 회고록을 낸 것이 문제였을까.

우리 역사에서는 남편인 사도세자의 죽음과 파란만장한 생을 토로한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과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의 자서전인 '백범일지'가 회고록의 진수라 하겠다. 결국 진솔하고 왜곡없는 객관적 술회가 회고록의 생명인 셈이다. 

정가에서 회고록 출간은 이제 하나의 정치행위로 자리잡았다. 거물급 정치인일수록 관심도가 높아진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 10명 중 회고록을 발간한 대통령은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노태우, 윤보선 전 대통령 등 5명이다. 판매량으로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공과 좌절'이 10만 부 정도로 가장 많고, '김대중 자서전' '노태우 회고록'이 그 뒤를 잇고 있다고 한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대통령의 시간'이란 회고록 출간을 앞두고 그제 예고편을 공개했다.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등 재임시절 그가 손댄 국사(國事)가 두루 언급돼 있다. 진실 여부를 놓고 공방이 뜨겁다. 출간 시점을 놓고도 말들이 많다. '회고록 정치'의 진면목을 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