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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세월호에서 고리원전까지 /이성희

자본과 권력의 야합, 무책임·무능한 국가…둘 사이는 멀지 않다

373만 목숨이 걸렸다…고리원전을 폐쇄하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5-01-14 20:30:31
  •  |   본지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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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획구역을 확대한다고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이건 무슨 말씀인가? '어차피 안전하지 않으니 마 포기하고 계시라' 이런 말씀이신가? 방사선비상경계구역 확대 문제에 대한 보고회에서 부산시 원자력안전실 관계자의 말씀이라고 한다. 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말씀이 어쩌면 진리일 수도 있다는 한심한 상황이 우리의 현주소다. 고리원전에 후쿠시마와 같은 사고가 난다면 비상계획구역을 반경 20㎞로 하든 30㎞로 하든 어차피 울산과 부산은 끝장이 아닌가, 그런 말씀! 우리는 후쿠시마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후쿠시마 이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원전에 대한 점진적 폐쇄 내지 원전 계획의 신중한 재검토에 들어갈 때 우리는 열심히 원전 확대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우리에게 후쿠시마는 그저 '강 건너 불'이었다.

원자력이 결코 무한 에너지가 아니며, 경제적이지도 않고, 청정하지도 않다는 것은 이제 그리 어려운 논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원자력발전은 한정된 매장량을 가진 천연자원인 우라늄을 원료로 하고 있다. 우라늄은 당연히 무한하지 않다. 그리고 그 한정된 자원인 우라늄의 가격은 수요가 많아지면서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우리는 대부분의 우라늄을 수입하는데 수입 우라늄은 다시 변환과 농축의 두 과정을 거쳐야 원전의 원료가 된다. 이 변환과 농축 과정 또한 우리는 외화를 지불하면서 외국에 맡기고 있다. 그리고 막대한 원전 건설비용, 도대체 견적이 안 나오는 방사성폐기물 처리 비용을 생각한다면 원자력은 엄청나게 비싼 에너지이다. 물론 청정하지도 않다. 변환과 농축 과정, 재처리 과정에서 많은 화석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이 정도는 이제 상식이다. 문제는 생명이다. 엄청난 규모의 생명이 얽힌 심각한 문제이다.

저 어처구니없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날 수 있는 나라라면 후쿠시마에 준하는 사고가 고리원전에서 발생하는 것 역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세월호에서 고리원전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왜냐하면 세월호에 얽힌 시스템의 문제란 것이 원전에 얽힌 문제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권을 좇는 자본과 권력의 썩은 내 진동하는 야합, 경제적 이윤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는 신자유주의적 삶의 양식, 총체적 부실의 재난관리시스템,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국가, 이 '위험사회'의 문제점은 놀랍게도 세월호 이후에도 거의 그대로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낡은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고리원전이 발생시킬 전율할 사고를 예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소는 최첨단 과학기술이 집약된 시스템이기 때문에 세월호와는 전혀 다른 문제라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과학기술은 인간과 이어져 있다. 어떤 과학기술 시스템도 인간의 욕망과 의도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어떤 과학기술 시스템도 완전할 수 없다. 물론 과학 그 자체도 결코 완전해 본 적이 없었지만. 조선시대 재난의 성격은 천재(天災)냐 인재(人災)냐의 문제였다. '왕조실록 세종8년'에 보면 임금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옛 사실을 상고하면, 하늘에서 내리는 재난이 있고, 인간이 저지른 재난이 있다. 사람의 일이 아래에서 움직이면, 하늘의 재변이 위에서 나타나는 것은 정한 이치이다." 동양의 전통적인 관점인 천인감응(天人感應)론에 근거해 있는 논지이지만, 이 말씀에서 '하늘' 대신에 '과학기술'이란 말을 대입해 넣어보라. 그러면 오늘날에 매우 적절한 말씀이 될 법하다. 인간의 삶의 양식과 과학기술의 논리는 상호작용한다. 삶의 양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곧장 과학기술의 치명적 결함이 될 우려가 크다.

"비상계획구역을 반경 30㎞로 하면 373만 명의 시민이 한꺼번에 탈출해야 하는데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원자력안전실 관계자의 말씀은 단순히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섬뜩하다. 반경 30㎞ 안에 373만 명이라니. 그리고 그 국민들을 책임지기 싫다는 말인가, 그럴 능력이 없다는 것인가. 국가가 세월호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우리는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참혹한 무책임과 무능력을. 이제는 300명이 아니라 373만 명 생명의 문제다. 적어도 울산과 부산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조용히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는 함께 외쳐야 한다, 원전은 멈춰야 한다고, 무엇보다 고리원전 1호기는 지금 당장 폐쇄해야 한다고.

가장 참혹했던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14년이 지난 2000년, 레오니트 쿠치마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세계 각국 저명인사 20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체르노빌의 마지막 원자로의 가동을 중단하는 버튼을 누르면서 "모든 인류를 위해 체르노빌은 반복되어서는 안 될 비극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며 오늘 우리는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한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우리도 더 늦기 전에 현명하게 그 버튼을 눌러야 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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