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학의 눈부신 발전과 게놈 프로젝트의 완성으로 암을 포함한 모든 질병의 정복이 눈앞에 있는 듯 보이지만 현대의학이 완벽하다고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의학은 현재의 수준과 경험에 의해 보편타당한 진료를 하는 것이지 절대적인 완벽성이 없다는 것을 환자들도 알아야 하고 의사들도 충분히 설명을 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과거 유럽에 창궐한 페스트(흑사병)의 경우 세균감염이란 사실을 모른 채 피를 뽑아내다가 혈액부족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은 마치 완벽한 듯한 기존 치료방법도 시간이 지나면 폐기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최근 가수 신해철 씨의 사망을 둘러싼 의료과실 논란으로 국민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많은 의혹이 있겠지만 대략 두 가지 문제로 압축되는 듯하다. 첫 번째는 환자·보호자에 대한 사전설명과 동의없이 위 축소 수술이 이뤄진 것에 대한 공방이다. 수술뿐 아니라 모든 치료행위는 충분한 사전설명과 동의가 꼭 필요하다. 수술이나 치료 중 사전 설명이 안 된 긴급한 추가 행위가 필요한 경우에도 보호자에게 추가 수술·처치가 필요함을 알리고 시행해야 한다. 이번 경우는 장 중첩 복강경 수술 중에 위 축소 수술이 추가로 이뤄졌는지에 대해 병원과 유족 측 의견이 다르므로 지켜볼 일이지만, 불가피하게 꼭 필요한 수술이라도 동의없이 진행됐다면 사전설명의무 위반에 해당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수술 후 일반적인 복강경 수술의 통증에 비해 상당 기간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였고, 부검 소견상 의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소견인 심낭 천공이 인지됐다는 점이다. 수술 후 복막염과 이로 인한 패혈증으로 사망하였다면 수술이나 투약, 주사, 처치 후 문제 발생 때 적절한 사후 처치를 했느냐가 쟁점이 될 것이다. 수술 후 일반적인 환자와 다른 통증이나 의학적인 소견이 발견될 경우 퇴원 조치를 보류하고 세심한 관찰과 원인 규명을 위한 복부 CT 등의 적절한 검사와 조치를 적극적으로 시행했어야 마땅하다.

아쉬운 점은 환자가 의사의 재입원 권유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부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치의나 의료진은 인간애를 가지고 적극적인 설명과 함께 '의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생명까지 문제될 수 있다'며 강력하고 끈질기게 설득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필립 하센 캐나다 국제의료품질관리학회(ISQua) 전 회장은 문제가 발생하면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환자에게 알리고 실수나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수라고 해도 의사의 능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며, 실수는 의사 혼자의 단일 실수가 아니라 소속 병원이나 재단에서 단체로 실수 인정 및 사과를 해야 한다고 하였다. 특히 수술과 처치 전에 오류나 문제 발생 가능성에 대한 설명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처럼 환자 측에 미리 설명을 하면 법적인 책임도 줄고 손해배상 비용도 줄어든다고 하였다. 실수를 인정하거나 죄송하다는 말을 하기 어려워하는 우리나라 실정에서 많은 의료 종사자는 세계적인 흐름과 내용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의 현실에서는 치료행위부터 불가항력적이든 의료진의 실수이든 원하지 않는 결과가 발생했을 때 유감 표명이나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면 의료진이나 병원이 실수를 인정한 걸로 되어 폭언이나 심지어 폭행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향후 의료소송 때 불리한 증언으로 인정되는 사례들도 있다. 이렇다 보니 상황을 인정하고 환자 측에 진정한 위로를 표시하면서 적절한 후속조치를 취해 더는 환자 상태의 악화를 막는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미국에서는 이런 과오를 줄이기 위해 의료진이나 병원이 의료분쟁 발생 때 환자 측에 바로 사과하고 위로를 하면서 적절한 사후 조치를 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있다. 이른바 '미안합니다 법'(I am sorry law)이 그것이다. 차후 소송으로 비화되어도 사과 표명이 잘못을 인정한 근거로 이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 법은 의사의 과오를 묻어두자는 게 아니고 어떤 상황에서든 환자를 보호하고 필요한 후속조치를 신속히 하도록 하며 감정싸움으로 불필요한 의료소송이 남발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 우리나라가 의료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환자·보호자와 의사, 간호사, 병원종사자, 일반 사회구성원들이 안전한 의료시스템을 만드는 데 서로 격의없이 진정한 소통을 이뤄내는 게 필요하다.

부산센텀병원 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