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훨씬 전, 학생들과 국립수목원에 갔다. 거기서 우리를 안내하던 박사 연구원이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이 수목원에 있는 나무와 식물들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궁금하신 것을 질문하시죠." 수목원에 나무나 식물이 적어도 수십만 종은 될 텐데. '설마?' 하는 의문에 정말 이것저것 물어 보았다. 놀랍게도 그 연구원은 모든 나무들에 대해 알고 있는 듯했다. 가리키는 나무가 무엇이든 바로 이름이 뭔지, 원산지는 어딘지, 언제 꽃이 피고, 열매는 언제 열리는지, 준비라도 해놓은 것처럼 줄줄 대답했다. 신기하고 놀라웠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옆에 앉은 대학원생에게 넋두리처럼 말했다. "그 연구원 대단하지 않아요? 그 많은 식물을 보고 척척 이야기하는 모습이 참 놀라웠어요. 식물을 공부한 학자니 그렇다고 하면, 나도 사람에 대해 연구하는 심리학자인데. 왜, 주변 사람들을 척 보기만 해도 이 사람은 이렇고, 저 사람은 저렇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을까요? 그 연구원이 나와 연배도 비슷하고, 또 나도 나름 공부를 했는데…."
구체적인 개인의 심리와 행동, 특히 특정 개인의 특성들이 어떤 심리와 행동으로 나타나는지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다. 살아있는 특정 사람의 '마음(Mind)을 읽는 것'을 그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라 한다.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서, 그의 특성들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성격을 '사주팔자'로 생각하고, 타고난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이것은 성격의 본질을 오해한 것이다. 인간은 생명체이기에 어떤 생물적인 속성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정작 한 사람의 특성은 그가 사는 환경 속에서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개인의 특성은 온전히 그만이 가진 고유의 특성이 밀랍된 채로 진공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격검사는 이런 특성을 파악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
심리학자는 마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것도 있지만, 나의 경우 무엇보다 일상에서 각 개인의 마음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려 한다. "무릇 인간의 마음이란…"하는 식의 보편타당한 답을 찾기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문제에서 어떤 방식을 행동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어떤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라고 구체적으로 말해 주려 한다. 이것이 '마음 읽기'이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자신이 왜 다른 사람과 다르며, 또 특정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또 그렇고 그런 문제를 가지면서 살게되는지 파악할 수 있다. 물론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읽어 주는 것을 때로 거부하는 사람들도 많다. 자신의 마음을 읽기보다,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고 위로해 주기만을 더 원하기 때문이다.
일상의 생활에서 '마음 읽기'는 왜, 내가 그 사람과 항상 문제가 더 잘 생기는데,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배우자와는 어떤 것 때문에 더 싸우는지, 부모와는 왜 사이가 안 좋은지, 누구랑 무슨 일을 같이 해야 하는 것이 좋을지, 지금 남자친구와 결혼해도 될지, 왜 자꾸 다른 사람 눈치를 보는지 등과 같은 개인 인생의 잡다한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것은 인생문제에 대한 답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 조금 더 알게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가진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히 인식하면서 그런 문제 상황에서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주로 행동하고, 그렇게 됨으로써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문제를 나름 파악할 수 있게 되면, 그 다음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비교적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의 삶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읽으려 하기보다 막연히 기대하는 마음으로 회피하거나 또는 자신이 보고 싶은 데로 보려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읽기 어려운 이유이다.
자동차를 사면 우리는 사용설명서도 받는다. 그런데, 뒷문 여는 법이나 에어콘 작동법을 알기 위해 깨알 같은 매뉴얼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단지 이전에 알고 있던 정보를 기초로 이것저것 눌러보면서 자동차를 조금씩 더 알아가게 된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아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그때그때 부딪히는 다양한 사건을 통해, 막연히 '나란 존재는, 나란 인간은' 정도의 생각만 하게 된다. 막연히 기도하는 심정으로 살려한다. 하지만, 이것은 스스로의 삶에 대해 더는 해 볼 방안이 없다고 느낄 때 보이는 위안을 얻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마음으로 답답하게 살아간다면, 자신의 마음을 읽는 길이 또 다른 생존법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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