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 없이 상사의 눈치만 살피고 시키는 대로 하는 공무원, 소위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이 세간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지금 부산시교육청 곳곳에서는 '영혼 없는' 교육행정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시교육청은 '교원 업무 경감'을 내세워 정책사업을 대폭 축소했다. 하지만 필요한 교육활동마저 상당수 폐지 또는 축소되면서 교육의 질 저하에 대해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내년부터 초·중학교의 교과학습 진단평가 폐지다. 시교육청은 이를 폐지하면서 일제고사 대신 담임의 평가와 관찰, 면담으로 학업이 부진한 학생을 진단하라는 개선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일선 교단은 "평가 도구도 없이 어떻게 부진 학생을 진단하느냐. 담임의 업무가 폭증한다. 진단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라며 그 '비현실성'에 반발하고 있다. 전교조가 줄곧 주장하던 진단평가 폐지를 업무 경감이라는 이름으로 정책사업 정비에 슬쩍 끼워 넣었다는 것이다.

내년부터 영재학급을 폐지하는 것도 명분이 빈약하다. 시교육청은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영재원 규모를 축소하고 영재학급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2009년 도입된 영재학급은 수월성 교육의 범위와 기회를 확대해 잠재력을 가진 '숨은 보석'을 캐내 육성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김석준 교육감 취임 이후 시교육청은 손바닥 뒤집듯 정책 기조를 180도 비틀었다. 폐지의 이유는 영재원보다 영재학급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과 교사의 업무 경감이다. 수준이 떨어진다면 영재학급 확대의 취지를 살리면서 내실화 등 개선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또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없애는 것에 대해 업무 경감을 끌어다 붙이는 시교육청의 궤변에는 말문이 막힌다.

혁신학교 정책 역시 문제가 많다. 혁신적인 교육모델이 아닌 전교조 등 일부 진보진영 중심의 '편향적인 학교'가 될 수 있다는 교육계 안팎의 우려가 크다. 그런데 혁신학교는 정책 추진 단계에서부터 이미 '편향적'이다. 특정 인사와 전교조, 진보 성향의 학부모단체가 주축이 된 자문기구가 정책 추진을 주도하면서 시교육청이 배제되고 있다는 지적(본지 8월 1일 자 6면 보도)에도 지난달 말 전교조 교사 중심의 혁신학교 실무추진단이라는 '옥상옥' 성격의 기구가 생겼다.

더구나 이 실무추진단이 교육감과 전교조의 '밀담'에 의해 탄생했다는 이야기마저 나오면서 정책의 신뢰성은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김 교육감은 지난달 초순 전교조와 만남을 가졌다. 전교조는 이 자리에 교직단체 담당 교육청 직원의 참석을 배제할 것을 요구했고, 김 교육감은 외부 공모로 뽑은 공보관(4급)과 정책사무관(5급)등 측근만 대동한 채 만났다.

투명해야 할 교육행정이 밀실에서 특정 단체와 논의됐음에도 부당함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시교육청 어디에도 없다. 교육현장에 필요한 진단평가 폐지와 명분 없는 영재학급 폐지에 대해서도 이의나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교육감의 정책을 변명하고 옹호하기에 분주하다. 보신주의 행정의 전형이자 자정 기능을 상실한 모습이다.

인사권자와 영향력을 가진 측근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경향은 공직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다. 하지만 교육공무원은 교육감이 아닌 시민과 부산 교육의 곁을 지켜야 하는 공복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소신과 영혼이 가득한' 교육행정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