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벨상의 계절이다. 기자들이 과학자를 많이 찾는 시기이기도 하다. 기자들의 질문은 대개 비슷한 요청으로 시작된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과학기사의 주된 독자가 초등학생일 리는 없다. 이런 요청에는 독자들의 과학지식 수준이 초등학생 정도일거라는 가정이 깔려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다른 분야에 대한 취재를 할 때에도 기자들이 이런 요청을 하는지 궁금하다.
2. "로미오와 줄리엣의 작가를 아시나요?" 로미오의 작가는 아는데 줄리엣의 경우는 모른다고 답하면, 회식 분위기가 좋아질 거다. 하지만, 정색을 하며 "처음 듣는 책인데요"라고 답했다가는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될지 모른다. "열역학 제2법칙을 아시나요?"하는 질문에는 사뭇 다른 반응이 나온다. 사람들이 오히려 질문자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것이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교양이지만, '열역학 제2법칙'은 교양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리학자가 보기에 이 두 질문의 중요도는 비슷하다. 열역학 제2법칙은 시간이 왜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지 설명해주는 법칙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죽는다는 것보다 중요한 사실이 있을까?
3.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교양'은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본문만 700페이지에 달하는 책으로, 유럽인의 입장에서 쓴 교양백과사전이라 할만하다. 필자가 이 책에서 놀란 것은 과학을 다룬 부분이 30페이지가 채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더구나 이조차도 토마스 쿤, 프로이트, 사회과학을 뺀다면, 고작 9페이지가 남는다. '교양'의 저자는 사람이 알아야할 모든 것의 목록에 자연과학을 1%만 넣은 것이다. 교양이란 타인과 소통하고 스스로를 성찰하여 그 결과를 행동으로 이끌어내는 능력이라고 한다. 과학이 이런 능력을 배양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일까?
4. 현대 우주론은 우리가 사는 지구가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고 말해준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도는 10여 개의 행성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태양은 우리 은하에 있는 수백억 개의 별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우리 은하는 현재까지 관측된 수백억 개의 은하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즉, 우주에서 지구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보다 인간에게 큰 성찰을 주는 사실이 또 있을까? 이것만이 아니다. 진화론은 인간이 특별한 생명체가 아니라고 말해준다. 현재의 모든 생명체는 똑같이 45억년을 진화해서 성공적으로 생존한 동료들이다. 어찌 보면 생명존중의 윤리는 진화생물학에서 기원하는지도 모른다. 또한,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5. 우주는 텅 비어 있다. 지구가 모래 알갱이만하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태양은 오렌지 크기가 되고, 지구는 태양에서 6미터 거리에 위치한다. 오렌지 크기의 태양이 부산역 광장분수대에 놓여 있다면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인 해왕성은 부산역 플랫폼에 위치한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첫 번째 별인 '알파-센타우리'에 도착하려면 일본 홋카이도 북쪽 끝까지 가야한다. 결국 부산역을 중심으로 반경 1600 킬로미터 이내에 오렌지 한 개랑 모래 알갱이 몇 개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따라서 주변에 무언가 물질이라 부를 만한 것을 발견한다면 그 자체로 기뻐해야 한다. 생명체는 지구에서만 발견되는 아주 특별한 물질이다. 내 주위에 생명체가 있다면 이것은 놀라워해야 할 일이다. 더구나 그 수많은 생명체 가운데 나와 같은 종(種)을 만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다른 인간을 사랑해야만 하는 우주론적 이유다.
6.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과학을 배반하는 과학'에 나오는 이야기다.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과학은 과학이 무엇을 해도 좋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설명할 수 없다"며 "다윈을 이해하려는 사람은 칸트를 읽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 "칸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다윈을 읽어야 한다". 칸트는 그의 인식론적 범주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왜 그가 별이 빛나는 하늘을 보며 전율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화론적인 사유가 칸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7. 학문의 융합, 문·이과의 통합이 요즘 학계와 교육의 화두다. 하지만 교양이라는 관점에서 과학과 인문학은 그동안 평등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이 과학을 교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함께 가기 위해서는 우선 평등해야 한다. 과학은 교양이다.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