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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 칼럼] 부산국제영화제와 무빙트리엔날레

대안문화 표방하며 부산 원도심 지키는 젊은 예술가들

BIFF는 거대화·제도화·권력화의 덫 스스로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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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가을이 깊어 가는 모양이다. 여기저기 축제와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다. 엊그제 부산 중구 원도심에서 열리고 있는 '무빙트리엔날레-메이드인부산'이란 행사를 둘러보고 왔다. 부산의 젊은 예술인과 문화기획자들이 한 달간 전시와 공연, 문화토론회 등을 열고 있다. 이 행사가 재미있는 것은, 부산항연안여객터미널에서 또따또가 갤러리, 부산지방기상청, (구)중구노인복지회관 등 원도심의 여섯 개 지점을 차례로 순회하면서 전시와 공연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대목이다. 원도심이란 일상적 공간 자체를 하나의 큰 전시장이란 개념으로 재정립한 셈이다.

부산연안여객터미널에서 열리고 있는 '마지막 출구-가방 프로젝트' 전시도 볼 만했다. 국내 60명, 해외작가 20여 명이 참가한 이 전시는 가방이라는 일상적이고 내밀한 여행도구를 오브제 삼아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니는 현대인의 삶을 풀어 보이는 전시회였다. 뒷골목의 돼지국밥집을 빌려 예술가들이 직접 술과 음식을 내면서 작가와 관객이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토론하는 '문화살롱'도 운영되고 있었다. 둘러보다 보니 이 행사를 만든 이들의 생각이 기존의 대형 문화이벤트에 대한 반성을 통해 시민들과 밀착되는 대안문화의 형성에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됐다. 이들이 발언하고자 하는 바는 획일적이지 않으며 억압적이지 않은 탈제도적 문화축제가 일상의 공간에서 있어야 한다는 것. 퇴락해 가는 원도심이란 공간을 고른 것 자체가 이들의 지향이 일상적·서민적·대안적이란 것을 보여주는 것일 게다.

전시를 둘러보면서 문득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대한 상념이 떠올랐다. 올해 19회이니 어느덧 성년이다. 20여 년 전 부산의 젊은 영화인들이 맨손으로 시작한 BIFF가 부산을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성장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남포동·광복동에서 해운대로 옮겨가면서 '영화의전당'이란 거대한 독립건물도 마련했다. 올해 예산이 123억5000만 원이라니 단위 행사로선 엄청난 돈이다. 레드 카펫을 걷는 배우들에 대한 관객의 환호 만큼 '화려함' '사상 최대' '아시아 최고' 등등이 단골 수식어가 된 것도 어색하지 않다. BIFF의 성공에 고무된 부산시가 영화·영상도시 육성을 선언한 것도 오래전이다. 영화 관련 공공기관까지 부산으로 옮기지 않았나.

그런데 말이다. 한편에선 부산국제영화제의 지나친 비대화·권력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것도 한두 해가 아니란 대목은 또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123억 원이란 예산에 값할 만큼 영화제가 내실있게 운영되느냐는 비판을 그저 '논을 산 사촌 때문에 배 아픈' 놀부 심보라고만 무시할 일일까. 글쎄, 부산이 20년을 거치면서 '영화제의 도시'를 넘어서 명실상부한 '영화·영상도시'가 되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BIFF가 내놓을 자랑거리가 언제부터인지 상영작 편수가 사상 최대라든가, 개막작 입장권이 몇 분 만에 동이 났다든가 따위 물량적 잣대에 그치는 것에 아무런 저항감도 느껴지지 않을까. '개막식에서 어떤 여배우가 가장 많이 벗었다더라'가 화제가 되는 현상은?
BIFF가 오늘의 성공을 거둔 것은 정치적 외압에 맞서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지킨 게 큰 몫을 했다는 게 정설이다. 나도 동의한다. '다이빙벨'을 상영하지 말라고 압력을 가한 일부 보수단체와 국회의원들은 '영화제'가 무언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부산시장이 특정 영화를 틀지 말아달라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최종 판단은 관객의 몫인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영화제의 독립성이나 표현의 자유와는 별개로 나는 영화제 측이 '다이빙벨' 논란에 좀 더 진지하게 대처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끄러워질까봐 쉬쉬하거나 아예 무시하기보다는 반대쪽의 주장까지 포함해 공론의 장에 올려 보는 게 옳지 않았을까. 그래야 비슷한 논란이 다시 발생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 식으로 말하자면, BIFF는 '유목적 문화행사'가 아니라 이미 '정주형(定住型) 문화행사'가 된 셈이다. '정주'란 단어의 이미지는 '고정성' '무거움' '대규모화' '제도화' 따위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미 거대화, 제도화된 이벤트다. 그 자체가 권력이기도 하다. 초기와는 달리 상업성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국외자의 섣부른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BIFF가 이제부터 싸워야 할 대상은 정치권력에 앞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싸워야 할 적의 목록엔 이너서클화, 관료주의, 매너리즘 같은 것들이 포함돼 있다.

프로그래머는 어떤 절차를 거쳐 선임하는가? 상근직원들은 얼마만큼 공채로 뽑는가? 영화제의 이름으로 걷는 협찬·후원금은 어떻게 집행되며 누가 감사를 하는가?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20년 전의 '창업공신'들이라 해서 물갈이도 없이 끝없이 중요한 직책들을 돌아가며 맡는 것이 과연 효율적일까? BIFF는 그 누구의 사유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 누구'에는 정부나 부산시의 관료는 물론 BIFF의 창립자들도 포함된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말라'는 게 BIFF 측의 모토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게 BIFF를 성역화하는 울타리가 돼선 곤란하지 않을까.

중구의 원도심에서 열리고 있는 '무빙트리엔날레'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 얼마나 도전적이고 실험적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대안문화'를 들고 나온 까닭은 분명하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기존 대형 문화행사들이 지역 고유의 문화적 정체성을 외면하거나 지역 예술가·시민들과 소통하지 못하면서 획일적인 문화 가치와 규범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장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물음에서 출발했다" 하고 보면 BIFF가 떠난 원도심의 빈 자리를 그들이 대신 채우고 있질 않은가.

영화제가 개막되자마자 시비를 거는 것 같아 짜장 미안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BIFF의 기획자와 집행자들도 한때는 '대안문화'였던 BIFF가 19년을 거치면서 혹시라도 '획일적인 문화 가치와 규범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장'이 돼 가고 있지나 않나 하는 자기 성찰은 해야 한다. 123억 원의 세금과 후원금을 받아 쓴다면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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