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자리에서 공인(公人) 논란이 벌어졌다. 많이들 화제 삼는 주제다. 공인론은 항상 어디까지를 공인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착된다. 좌중에 미국 유학 경험이 있는 한 법률가는 유명 연예인이나 재벌 총수들도 공인 범주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영향력에 근거한 관점인데 미국은 인기 연예인도 공인으로 본다고 그는 강조했다.
내 생각은 매우 달랐다. 공인을 좁고 단순하게 정의하자는 입장이다. 공인이란 사인(私人)의 상대어 혹은 반대어다. 사인이란 본질적으로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다. 돈을 벌고 명예를 얻고자 하는 모든 일이 자기 자신과 집안을 위한 것, 즉 중세적 입신양명의 의미를 갖는다. 그런 사인들이 스스로 누리는 혜택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거나 도덕적 처신을 하는 것 또한 스스로의 사익을 유지, 확장하기 위한 과정으로 본다. 아무도 사인에게 공공가치를 위해 헌신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당연히 공인에게는 이와 정반대되는 가치추구를 요구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공인 범주는 아주 제한적으로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연기자나 가수의 일이 대중에게 헌신하기 위한 건가? 그런 건 북한의 인민배우, 인민가수에게 해당되는 일이다. 기업인이 사회에 봉사하기 위해서 사업을 하는가. 그런 말은 그저 듣기 좋은 립서비스일 뿐 돈벌이가 목적이다. 그들은 공인이 아니라 유명인, 다른 표현으로 셀리브리티에 해당된다. 사인에게 공인 모자를 씌워서 위선자 만들지 말자고 나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누가 공인인가. 사적 이익 추구를 상당부분 포기하는 대신 사회적 존경을 받는 위치의 사람들을 말한다. 장관, 국회의원, 판검사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권력이 주어지는가. 그런 위치의 사람들이 사적 이익을 위해 직분을 활용한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하지만 사익 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공인은 출발부터 공적 가치를 위해 자기 인생을 바쳐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야 하며 그들의 권능은 직위상의 규정에 앞서 삶의 과정에서 나올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생각은 대뜸 반론에 부딪힌다. 대체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 어디 있고 얼마나 되겠느냐고. 또 그런 사람이 공직에서 유능하다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고. 그렇다. 이상주의에 불과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이상주의적 발상이라고 해서 그런 방향성마저 포기해야 할 것인가.
5공화국 시절 과거 기구를 확대 개편한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라는 거대기구가 정부 주도로 탄생했다. 그 회장이 전경환 씨였다. 그때 궁금했다. 전경환 씨가 새마을운동과 무슨 관계가 있는 사람이냐고. 새마을운동의 공공적 가치에 그가 어떤 면에서 부합하는 것이냐고. '전경환 회장님'의 등극은 오로지 대통령의 친동생이라는 연고뿐이었다. 그 '회장님'은 후일 온갖 비리에 연루되어 실형을 살았다.
대한적십자사가 새 총재를 내정했다. 이사진 전원 동의란다. 내정자가 김성주 씨다. 대선 과정을 통해 그는 별도의 소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알려진 인물이 되었다. 박근혜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이었던 그는 재벌회장 딸로서 별도의 자기 기업을 세워 성공했으며 온갖 튀는 언행으로 자주 입방아에 오른 바 있다. 그 언행 중에는 소위 스펙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깊은 좌절감을 안겨주는 내용이 상당수 있어 한때 비호감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전원동의를 했다는 이사들에게 묻고 싶다. 김성주 씨가 도대체 적십자 활동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과거 강영훈, 한완상 총재와 같은 사회적 신망과 어떤 면에서 부합하느냐고. 그가 유능한 인물이고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또 사회봉사활동도 많이 해왔노라고 여러 근거를 댈 테지만 대단히 이상해 보이는 인사인 것은 사실이다. 말 둘러댈 필요 없다. 대선 보은인사의 전형일 뿐이니까.
한국에서 적십자사는 남북관계 진전 과정에서 중요한 창구 역할을 해왔다. 기구의 주요 상대자가 북한인 셈이다. 총재 자리가 희화화 대상이 될 때 그 기구가 제대로 돌아갈지 의문이다. 지금 희화화의 정점이자 아예 존재가 없어진 것처럼 보이는 자리가 국무총리직이다. 주요직은 아닐지라도 코미디언 출신 80세 재미교포 노인을 감사로 선임한 한국관광공사는 지금 어떤 시선을 받고 있는가. 각종 공직이 대통령 주변인들에게 선물로 주어지고 선임된 인물들의 면면이 허탈한 웃음을 자아내는 실정이라면 이제 공인의 정의를 바꾸어야 할 것 같다. 공인이란 대중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존재, 사익추구의 달인, 줄 잘 서고 윗사람 잘 모시는 처신의 귀재…. 뭐 이런 것?
시인·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