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한 부산시의 고위 공무원과 얼마 전 우연히 마주쳤다. 어떻게 지내느냐 물었더니 "연금술사가 됐습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연금술사라면 다른 물질을 합성해 금을 만들려던 중세의 화학자들 아닌가. 뭔 말인가 싶어 되물었더니 하는 말이 걸작. 연금 받아 술이나 사 먹는 사람이 연금술사라나. "그나마 연금 받아 술을 마실 팔자(?)인 것만도 다행이네요"하고 농담 아닌 농담을 주고받았다.

연금은 인류의 지혜가 만들어 낸 노년의 생활 보장 장치. 서양에선 공적 연금의 기원은 고대 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BC 201년 지중해의 도시국가 미르토스는 시민들에게서 군사비를 강제 차압하고는 종신연금 형태로 나눠 갚았다고.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군인금고'를 만들어 퇴직수당을 지급했다. 20년의 현역과 5년의 예비역 복무를 마치면 은화 3000 데나리우스를 줬다고.

근대적 의미의 공적 연금 제도는 1667년 영국왕 찰스 2세가 퇴역 해군장교에게 기본급의 50%를 종신연금으로 지급한 게 시초. 미국 정부는 1789년 독립전쟁 상이군인에게 연금을 지급했고 이후 경찰, 소방관, 교원 연금도 잇따라 설치됐다. 국민 모두를 위한 공적 연금은 1889년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고안한 게 시초. 정년 65세란 개념도 그때 만들어졌다.

우리라고 연금 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동양에서 관료의 퇴직 연령은 대개 70세. 신라 말의 학자 최치원이 일흔에 치사(致仕)했고, 고려 때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도 ' 치사표(致仕表)'란 명문장을 남겼다. 치사를 하면 봉록의 절반에 명예직인 노인직(老人職)을 내렸다. 생일마다 치두미(致豆米)·치주(致酒)라 해서 곡식과 주육(酒肉)까지 내렸으니 지금보다 못 할 게 없는 셈.

정부가 재정 적자에 빠진 공무원 연금을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개혁한다고. 2016년부터 임용되는 공무원에겐 내는 돈을 지금보다 42.8% 올리고, 지급 연금은 국민연금 수준으로 낮춘다는 것. 대신 퇴직수당을 퇴직금으로 바꿔 현실화한다. 이렇게 되면 안정적인 노후 보장이란 공무원의 매력 포인트 하나가 사라지게 되는 셈. 현직 공무원과 신규 공무원 연금으로 이원화되고 60년 후엔 공무원 연금 자체가 사라지게 될 거란 예상. 연평균 3조 원의 적자가 발생하니 뜯어고치긴 해야 할 터. 그러나 선배보다 푸대접 받게 될 신규 공무원의 박탈감도 클 듯. 민감한 문제라 반발이 클 터이니 차근차근 추진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