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규모의 육상대회요? 꿈도 못 꿉니다."
19일 만난 부산육상경기연맹 신순철 부회장은 한숨부터 쉬었다. 그의 하소연은 절절했다. "부산에는 종합운동장이 두 개 있어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이 열린 아시아드주경기장과 구덕운동장입니다. 문제요? 국제대회는 고사하고 전국대회도 못 연다는 겁니다."
수천억 원이 투입된 경기장은 왜 반쪽이 됐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돈이 없어서다. "국내외 경기를 하려면 대한육상경기연맹의 사전 공인을 받아야 합니다. 트랙이나 보조장비의 상태를 미리 점검 받는 거죠. 아시아드·구덕경기장은 수년째 공인을 받지 않았습니다. 부산시가 공인 경비를 '나 몰라라' 하고 있거든요." 동아대 이재홍 육상 감독 역시 "부산에선 공인 경기장이 없어 국내 육상대회조차 할 수 없다. 이곳에서 세운 기록은 비공인 처리된다"고 확인했다.
아시아드주경기장은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의 전용구장이다. 육상 트랙에 간이스탠드를 설치한 탓에 육상대회를 하기 힘들다. 간이스탠드 때문에 트랙도 훼손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보수에 20억 원 정도 필요하다고 추산한다. 신 부회장은 "트랙을 고치지 않으면 공인이 불가능하다. 국내대회 유치도 못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악순환의 연속"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구덕운동장 역시 2005년 공인 기간이 만료됐다. 현재 우리나라 1~3종 공인육상경기장은 50여 곳에 이른다. 부산은 하나도 없다.
사직수영장도 처지는 비슷했다. 부산수영연맹 김영도 전무이사는 "부산아시안게임이 끝난 2003년부터 올해까지 12년 동안 전국 규모의 수영대회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수영대회 유치 예산과 시설 노후화도 원인이다. "사직수영장에는 국제수영연맹(FINA)이 공인한 스타트 블록이 없어요. 부산아시안게임 때 사용한 옛 제품 그대로입니다. 무엇보다 수영대회를 유치하려는 부산시의 의지가 부족합니다."
매년 전국 규모 수영대회는 15개 정도가 열린다. 선수단을 포함해 보통 3000여 명이 개최도시를 찾아 4일가량 머문다. 경제적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김 전무는 "아시안게임 경기장에서 부산 선수만 참가하는 동네대회만 열리는 게 말이 되느냐. 선수나 지도자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지난 5월 인천 소년체전을 앞두고는 웃지 못할 일도 생겼다. 사격 대표 선수들이 영도사격장을 두고 경남 창원이나 충북 청원사격장으로 전지훈련을 갔다. 부산사격연맹 서성동 전무는 "공인대회는 모두 국제표준시스템인 전자표적을 쓴다. 종이표적 교체에 따른 경기시간 지연을 막기 위해서다. 영도사격장은 아직 종이표적을 사용한다. 이곳에서 훈련한 선수들이 실전에서 당황하기 일쑤다. 할 수 없이 전지훈련을 간다"고 했다. 전국사격대회가 부산에서 열린 것도 까마득한 옛일이다.
대한체육회 가맹단체는 매년 700여 개의 전국대회(국제대회 제외)를 개최한다. 지난해 부산에선 3%도 안되는 15개 종목 18개 대회가 열렸다. 운동의 기초인 육상·수영은 물론 동계스포츠 종목은 아예 없었다. 체육인들은 "도시 규모로는 한 해 50개 이상의 대회가 열려야 정상"이라고 지적한다. 부산이 연중 가장 큰 이벤트인 전국체전을 개최한 것은 부산아시안게임 리허설 형태로 열린 2000년이 마지막이었다. "부산 체육의 성장은 2002년 아시안게임에서 멈췄다"는 현장의 불만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