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월 아세안 10개국과 우리나라 대통령이 참가하는 한-아세안(ASEAN) 정상회의가 부산에서 개최된다. 2005년 부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이후 참가 정상의 수 면에서 최대 규모의 고위급 다자외교 행사다. 아세안은 동남아 10개국으로 구성된 국가연합체로서 산하에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과 남북한이 함께 참가하는 아세안지역포럼(ARF)을 비롯해 아세안 10개국 및 한중일이 참가하는 아세안+3, 그리고 이번 부산에서 개최될 한-아세안(아세안+1) 등 다수의 다자기구를 두고 있다.
유럽은 EU(유럽연합) 창설을 통해 이미 경제공동체를 넘어 정치, 안보 공동체로 발전하고 있고, 북미의 경우도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통해 세계 최대의 단일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동북아의 경우 지역 국가들 사이 역사 인식과 영토 분쟁을 둘러싼 갈등으로 경제공동체나 지역공동체 창설은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일한 희망이 아세안을 핵으로 동아시아공동체(EAC) 논의의 불씨를 지피는 것이다. 아세안은 1967년 방콕에서 동남아의 5개 반공 국가에 의해 창설된 후 과거 한때 이념적으로 반대편에 서 있던 베트남을 비롯한 인도차이나 3국과 미얀마 등을 추가해 현재 아세안10을 형성했다.
그동안 역내 자유무역협정(AFTA)을 발효한 데 이어 아시아 유일의 안보포럼인 ARF 창설에 성공하는 등 지역 차원의 집단협력에 미숙했던 아시아에서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면서 소중한 경험을 축적했다. 과거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경험이 오늘날 유럽공동체 결성의 소중한 참고자료가 되었듯 아세안이 축적한 지역협력 형성의 노하우와 경험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 국가가 미래에 EAC를 건설하는 데 유익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아세안은 우리나라와 2007년 자유무역협정(KAFTA)을 체결한 후 우리나라의 2대 교역상대(2013년 기준)로 성장하는 등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이같이 동아시아 지역 차원은 물론 우리나라와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는 아세안국가 정상과 한국 대통령이 오는 12월 부산에서 만나 한-아세안 양자 간 경제협력을 비롯해 지역 현안과 한반도 문제까지 협의하게 된 것은 개최 도시 부산의 입장에서 볼 때 큰 경사가 아닐 수 없다. 다만 부산 정상회담의 성공과 혜택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외교부와 부산시 간의 조화롭고 원활한 역할 분담과 상호 협력이 요구된다. 비록 주요 어젠다와 프로그램 설정, 의전과 경호, 주요 회의의 통역 등 핵심적 역할은 외교부가 맡고, 부산시는 시설과 보조인력 제공 및 행정 지원업무를 맡게 되겠지만, 행사의 광범위한 파급 효과는 전적으로 부산이 누리게 된다.
이번 회의의 파급효과는 장기적 관점에서 봐야 할 것이다. 한 나라에서 불과 수십 명의 소수 인원이 참석하며 2~3일에 걸친 단기행사인 만큼 수치로 산출되는 경제적 이익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최고위급 국제외교행사를 열었다는 사실이 마이스(MICE) 도시로서의 위상을 높이는 효과, 시민에게 심어주는 긍지, 외국인 투자 유치 및 무역, 나아가 문화·예술·관광자원의 홍보에 미치는 효과는 수치로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또한 과거 APEC 당시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아 APEC 누리마루하우스 건립, 유엔기념공원 인근 정비, 해운대 APEC 나루공원 조성 등을 했듯이 이번에도 부산시와 지역 국회의원 등이 함께 노력해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을 최대한 확보해 도시기반시설 확충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것에서부터 세밀하고 알뜰한 준비와 접근이 요구된다. 과거 APEC 정상회의 당시 필자는 외교부 자문위원으로서 활동하면서 APEC 기념우표의 도안으로 정상회담 장소였던 누리마루 모습을 제안해 관철시킨 경험이 있다. 부산시는 APEC 정상회의 건배주로 향토 술을 주선해 지역 기업 홍보에 정성을 쏟았다. 이번에도 부산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 여유가 있는 영부인을 위한 관광 일정, 만찬 음식 종류와 장소를 정할 때 지역의 의도를 반영시켜야 한다.
아울러 정상들이 체류할 특급호텔은 물론, 수행원들이 묵을 소규모 숙박시설의 환경과 종사자들의 친절 교육에도 신경을 쓰는 등 선진 글로벌 마이스 도시로서 부산의 이미지를 홍보하기 위해 꼼꼼히 챙겨야 할 것이다.
전 동티모르 대사·부산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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