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위 조절이 안되면 물은 넘치고 둑은 터진다. 괜한 욕심에 제방만 높게 쌓아 올리면 언젠가 저수지의 봇물에 귀한 목숨이 쓸려나가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재해 재난뿐 아니라 무리한 수요예측으로 세금을 축내고, 일부 기업과 관피아 좋은 일만 시켜준 항만, 도로, 교통시설 등에 대한 자각과 반성이 뒤따르고 있다. 교육과 인력양성 분야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
고급 과학기술인력을 양성한다는 과학기술원(과기원)을 살펴보자. 지금 전국 방방곡곡에서 너도나도 과기원 설립을 요구하고 있다. '과학기술원'이라고 하면 국민들은 1971년에 설립된 대전의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를 떠올린다. 하지만 광주과기원, 대구경북과기원, 울산과학기술대학 등 엇비슷한 시설이 벌써 4개나 된다.
여기에 창원과기원, 부산과기원, 부산경남과기원, 전북과기원, 한국방사선의과학기술원 등 5개 과기원 설립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고, 울산과학기술대학은 차제에 과기원으로 승격해달라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렇게 되자 '우리도 질 수 없다'는 식으로 제주, 경기, 강원, 충북까지 과기원 설립을 요구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전국에 최소한 10개 이상의 과기원이 들어서야 할 판이다.
과기원은 지금도 봇물이 터질 지경이다. 전국적으로 과학고와 과학영재학교는 22개이다. 국회 김세연 의원실의 조사로는 2013년도 졸업생이 2190명이다. 그런데 카이스트와 광주, 대구, 울산과기대 등 기존 4개 시설의 신입생 정원은 1878명이다. 과학고 졸업생 중에는 이른바 SKY대나 포항공대로 진학하는 학생도 많으니 과기원 정원은 현재도 과학고 졸업생보다 많은 '위험수위'라고 봐야 옳다.
사범대는 교사 양성을 위해 세워진 특수목적학교다. 하지만 사범대를 나와서 학교 선생님이 되는 학생은 10명에 한두 명 꼴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자료를 보면 전국 15개 국공립 사범대의 임용시험 합격률은 평균 10.3%에 불과했다. 재수, 삼수생을 고려해도 20%를 넘지 못할 것이다. 한때 부산대학교에서는 사범대 수학교육학과의 커트라인이 의예과와 비슷했다. 의대 졸업생들의 의사 국가고시 합격률이 95%선이니 같은 성적으로 의대에 갔으면 의사가 됐을 인재들이 사범대로 진학해 '교직낭인'으로 전락하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 부산대 공대는 취업률이 85% 전후이지만 실제로는 200%가 넘는다고 한다. 삼성, LG, 현대 등 대기업들에 원서를 내면 이중, 삼중으로 합격한다는 것이다. 기계, 건축 등 공대 주요 학과는 수학을 바탕으로 구조를 설계하므로 수학 잘하는 학생들을 반기고 있다. 기업도 이런 인재를 필요로 하지만 공급이 부족한 상태다.
과기원과 사범대 정원 문제는 수년째 겉돌고 있는 논제들이다. 이는 정부에다 해결하라고 해서 풀릴 일이 아니다. 2004년 설립된 대구경북과기원은 당시 과학기술부가 맹렬히 반대했지만 국회에서 법안을 만들어 통과시켰다. 그 여파로 지금은 6개 과기원법안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그러니 국회가 풀어야 할 문제다.
사범대 정원 문제도 마찬가지다. 65세까지 정년이 보장되고 각자 준 독립기관화되어 있는 교수들을 상대로 임기가 1년 전후인 교육부의 해당 실국장들이 무슨 논의를 하겠는가. 이런 난제를 풀 곳은 국회밖에 없다. 정부부처, 지자체, 교육청, 대학, 관련 전문가 등 목소리 큰 사람들을 불러 모아 밤을 새워 논의할 수 있는 기관은 관련법을 만들고 예산을 결정하며 국정감사를 하고 있는 국회뿐이다.
이제 19대 국회 하반기가 시작된다. 국회도 여야 당쟁과 무더기 법안 통과라는 오랜 적폐를 그만두고 밤새워 논의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국회가 이런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도 부산의 입장에서는 걱정이 앞선다. 과기원을 비롯한 국가 과학기술을 논의하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 부산의원이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서병수 시장 당선인은 연구개발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혔지만 과학기술은 지방에 위임된 것이 별로 없는 국가 사무이다. 해당 지역 의원들이 국회에서 치열하게 논리를 전개해야 지역 과학기술도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 미방위가 비인기 위원회여서인지 전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도 부산의원들이 아무도 신청하지 않았다. 해당 지역의 국회의원들이 기피하는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타 지역 의원들이 부산의 미래를 얼마나 챙겨주겠는가. 집권 여당이자 거대도시 부산의 압도적 다수당인 새누리당이 무슨 억한 마음으로 국회 미방위를 계속 배척하는지 그 속내를 알고 싶다.
부산과학기술협의회 총괄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