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전해내려 오는 상상 속 동물들은 많지만 석상으로 현실화돼 우리 곁을 늘 지키고 있는 것은 해치(일명 해태)가 으뜸이 아닌가 싶다. 영물로 여겨지는 이 동물을 조각한 해치상이 서울 광화문 앞, 국회 의사당 정문, 대검찰청사 앞, 세종 정부청사 앞 등 법과 국정을 다루는 주요 국가기관에 떡 버티고 서 있어서다. 옳고 그름을 엄정히 따지는 법 정신 구현을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 해치상이 딱 제격이기 때문이다.
양의 외양을 하고 머리에 하나의 뿔과 목에 방울이 달린 해치는 이렇듯 시시비비란 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물이다. 중국의 고대 신화집이자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는 '순임금은 죄인들을 다스릴 때 해치에게 판단을 맡겨 죄가 있으면 뿔로 들이받고 죄가 없으면 가만히 있었다'고 적혀 있다. 부정을 한눈에 간파하는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닌 동물이었던 셈이다. 진나라시대 어사관을 해치관으로도 불렸고, 당나라시대부터 청나라시대까지 법을 다루는 관리들의 관복에 해치문양을 넣기까지 했다. 이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을 구현하는 기풍을 진작시키려는 조치였다.
우리나라도 이런 습속이 전해온다. 신라시대에 '해치부'란 관직이 있었고, 조선시대 경국대전에 '조복 사량관 의복에 해치를 붙인다'고 규정돼 있을 정도다. 특히 사헌부의 수장인 대사헌은 해치 문양을 새긴 관복을 입어야 했다. 또 대신들이 조정에 들 때 광화문을 지나면서 해치상의 꼬리를 쓰다듬는 의식인 진미가 있었다고 한다. 조정 신료들이 대전이 있는 경북궁까지 가면서 몸과 마음을 경건히 가다듬는 의식의 출발점이었던 셈이다.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우리의 해치상이 놓인다. ICJ 예술품 기증사업 공모에 우리 정부가 제안한 '웃는 해치상' 작품이 최종 선정됐다는 소식이다. 정면폭 100㎝, 측면폭 50㎝, 높이 180㎝ 크기의 이 해치상은 재판소 1층 로비 입구에 자리하게 될 예정이다. ICJ는 날로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국제사법기구다. 일본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독도 문제 분쟁화도 만약 다룬다면 이곳에서 이뤄지게 된다. 일본의 우경화가 노골화되고 있는 시점에 의미 있는 예술품이 ICJ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국제사회에 일본의 과거사 망언 및 억지주장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으로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듯싶다. '헤이그 밀사사건'이 있던 비운의 역사 현장에 우리 해치상이 들어서다니 만감이 교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