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당 합당' 이후 처음으로 열린 1990년 3월 7일 임시국회 내무위원회 회의실. 당시 김태호 내무부 장관을 불러 놓은 자리에 의원들이 하나 둘 빠져 나가면서 급기야 의사 정족수인 3분의 1에도 못 미쳐 산회가 됐다. 민자당 오한구 내무위원장은 국회 직원들을 시켜 식당 휴게실 의원회관 등을 30여 분간 찾아다니게 했지만 끝내 회의를 이어가지 못했다. 오 위원장은 성원 미달로 산회될 것을 눈치챈 내무부 공무원들이 슬그머니 자리를 뜰 채비를 하자 "왜들 이래" 하며 버럭 화를 냈지만 체면만 구기고 말았다.

일선 학교도 아니고 국회 본회의장에서 간혹 의원들을 호명하는 일까지 있다. 지난해 10월 1일 대정부 질문을 위한 본회의에서 박병석 부의장이 의원들이 오지 않자 의원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 출석 독려 겸 시간벌기에 나섰지만 의사 정족수인 재적의원 5분의 1인 60명을 겨우 넘긴 71명에 만족해야 했다. 오죽하면 그가 "의원 여러분, 긴급 질의라는 걸 다시 한 번 상기시켜 드린다"는 유감을 표했을까.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 회의는 '나 하나 없어도 괜찮겠지' 하는 의원들의 타성으로 간신히 꾸려지기 일쑤다. 그러나 정작 정략적 이익이 걸린 사안에는 태도가 180도 표변한다.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에 목숨을 걸다시피한다. 2000년 12월 30일 송년 분위기에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이 JP(김종필)의 자민련 원내교섭단체(20석)를 위해 3명의 의원을 빌려준 '의원 임대사건'을 터뜨려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당적을 바꾼 송석찬 의원이 "민주당의 연어가 된 심정으로 간다"고 한 말은 시중의 안줏거리가 된 것은 당연지사. 결국 이들은 8개월 만에 원복했다.

세월호 참사를 다루겠다며 여야가 뜻을 모아 연 임시국회를 의원들이 외면하고 있다. 지난 21일 본회의에서 의사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지각 개회하는 구태를 보였다고 한다. 많은 의원들이 지방선거 행사 등에 참석했기 때문이란다. 잿밥에만 관심이 있고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의원들은 세월호 선장 선원과 무엇이 다른가. 재적의원 300명 중 60명도 채우지 못했다면 평형수가 5분의 4 이상 빠져 나갔다는 말이다. 이런 국회가 침몰하지 않고 세월호 참사 대책수립이란 목적지까지 제대로 순항이나 할까. 국민의 걱정을 더는 게 아니라 보태는 국회를 언제까지 봐야 하나. 문제의 평행수를 바로 교체할 수도 없고.